프라하의 봄과 서울의 봄 -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말랑파워
말랑파워 · 나는야 용소야 나만의 길을 가련다
2023/10/14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1. 프라하의 봄

“일반적으로 ‘프라하의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런 일들의 마지막 시기를 말한다.
목가를 지키던 자들은 자신들의 아파트에 설치되었던 도청기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으며, 국경은 개방되었다.
바흐의 위대한 악보로부터 여러 가지 음이 달아났고 자신의 음색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믿은 수 없을 만큼 활기찼고, 흡사 카니발과도 같았다. 전 지구를 위해 위대한 푸가(fuga)를 쓰고 있던 소련은 음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1968년 8월 21일, 소련은 보헤미아에 50만 대군을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약 120만 명의 체코인이 나라를 떠났으며, 남은 사람들 중에서 약 50만 명이 직장을 버리고,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벽촌의 공방, 외딴 구석의 공장, 트럭의 운전석 등, 요컨대 그들의 말소리가 어떤 사람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장소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꺼림칙한 추억의 그림자가 복고된 목가로부터 국민들의 마음을 이탈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었고, ‘프라하의 봄’과 소련군 탱크의 진입이라는 오점이 아름다운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8월 21일의 기념일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없고, 자신의 청춘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이름은 마치 학교 숙제 속의 틀린 부분처럼 꼼꼼히 지워지고 말았던 것이다.“(p.26)

2. 서울의 봄

서울에도 프라하를 닮은 봄이 있었다. “인간들이 자신의 청춘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p.25)으로부터 프라하의 봄이 찾아왔다면, 서울은 제왕에게 버림받은 2인자의 권총으로부터 온 게 다를 뿐.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죽였다. 18년 동안이나 계속됐던 일인독재의 비참한 결말이었다. 긴급조치 등 유신 하에 신음하던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열망했다.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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