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게뭐고 ㅣ 이토록 성실한 결여

악담
악담 · 악담은 덕담이다.
2023/09/08

 
알라딘 서점 제공
 
80 넘어서 공부하려니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눈 뜨면 잊어버린다
아들 둘 딸 둘 다 키웠는데
그 세월 조금 잘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며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꾸 하라 한다 시어머니 똑똑하라고
자꾸 하라 한다
- 공부 전문 ㉠      


뒤늦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가 쓴 시다.  제목은 << 공부 >> 다.  원문은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 많아서 편집자의 마음으로 고쳤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
 
80 너머가 공부할라카이
보고 도라서이 이자부고
눈 뜨만 이자분다
아들 둘 딸 둘 다 키았는데
그 세월 쪼매 잘 아랐우면
조앗을 거로
우리 미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꼬 하라칸다 시어마이 똑똑하라꼬
자꼬 하라칸다
㉡  


" 어떻습니까, 틀린 철자를 고치니 의미 전달이 정확하고 보기 좋죠 ? " _ 라고 말했다가는 문학을 사랑하는 얼룩커들에게 무식한 놈이라며 따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과 ㉡은 같은 시이지만 수용자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곽두조 할머니가 쓴 시 << 공부 >> 는 틀린 글자여야지만 제대로 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 이자부고 " 의 바른 문장은 " 잊어버리고 " 이지만,  " 이자부고 " 는 " 이자부고 " 라고 쓰여야지만 시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팔순 넘은 나이에 가나다라 한글을 배우니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눈 뜨면 잊어버리기 일쑤여서 " 잊어버리다 " 라는 단어도 어느새 잊어버려 " 이자부고 " 라고 쓴다. 할머니의 공부는 工夫가 아니라 空夫다. 할머니에게 배움은 곧 망각이다.
 
만약에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눈 뜨면 잊어버린다고 하소연하던 할머니가 냉큼 " 잊어버린다 " 라고 또박또박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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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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