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스와 헤어질 결심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10


게임, 특히 전자 오락을 악의 축으로 생각하는 집에서 자랐기에(지금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게임을 원없이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간편히 켜서 즐기고 숨기기도 편한 휴대용 게임기를 구입한 시기가 상당히 늦었던지라 게임은 대체로 집이 비었을 때, 혹은 오밤중에 가슴 졸이며 하는 행위였고, 덕분에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즐거움의 한구석에 끼어있을 때가 많았다. 몰래 깨는 금기가 더 재미있는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스릴도 가끔 즐겨야 스릴이지 항상 깔려 있으면 고통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런 환경 덕분에 집이 비는 날은 거실에서 게임을 하는 게임 데이처럼 되곤 했는데, 그런 날 중에서도 특히 감탄했던 날이 플레이스테이션 2로 ‘검호’라는 게임을 즐긴 어느 날이었다. 이 게임은 에도 시대 즈음의 사무라이가 되어 검술도 익히고 각지의 도장을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하거나 명성 높은 검호와 결투를 벌이기도 하는 시리즈로, 서로 수십 대는 두드려대야 겨우 끝나는 여타 격투 게임과 달리 여차하면 한 방에 죽어버린다는 현실감이 기막힌 장점이었다. 신선조고 신선조 할아버지고 균형만 깨지면 한 방에 삼도천 너머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게 여간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꽤 오래도록 재미나게 했는데, 집이 빈 그날에는 거실에서 게임을 좀 하다 ‘크, 재미있네’ 하고 정신을 차렸더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흔히 ‘문명’등의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을 잊게 된다는 ‘타임머신’ 현상을 체험했던 것이다. 밥 먹는 것조차 잊었으니 이쯤되면 확실히 시간 여행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날 전후로도 엇비슷한 경험이 있긴 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진 않다. 이전에는 검호만큼 재미있는 게임을 찾지 못했고, 이후에는 몰입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마 몰입도가 떨어진 데에는 스마트폰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무슨 알림이 와서 시선을 끌어대니 도무지 스마트폰을 잊을 때가 없는 탓이다. 때문에 요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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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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