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의 서막들
2023/06/08
1987년보다 한 해 앞선 1986년은 매우 우울한 한 해였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졌다. 전편에서 언급한 성고문 사건은 그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86 아시안 게임을 성공리에 치른 뒤에는 더 기세가 등등했다. 급기야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진다. 학생운동을 양분하고 있던 ‘자민투’ 세력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정권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고 봤고 ‘애학투련’ 결성을 시도한다. 그 집회 장소가 건국대였다. 그런데 이 애학투련의 결성을 기다린 건 자민투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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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봉쇄가 일상이던 시절 이상하게도 경찰은 학생들의 건대 진입을 막지 않았다. 10월 28일 오전 7시부터 녹색 제복의 ‘안드로메다 군단’ 전경들이 배치돼 있었지만 출입은 지극히 자유로웠고 학생증 검사조차 없었다. 그것은 그물이었다. 멋모르고 들어온 물고기들을 가득 채운 후 한 번에 쑥 들어올려 만선을 노래하기 위한 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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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까지 마음 푸근하게 치르고 집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시간, 경찰은 행동을 개시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건국대학교를 들이친 것이다. 대경실색한 학생들은 학생회관과 단과대 건물로 쫓겨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지만 준비 없는 농성의 끝은 뻔했다. 대학생들이 홑겹 잠바로 10월 말의 한기를 버티며 초코파이 하나를 수십 명이 나눠 먹던 10월 30일, 정부는 저 유명한 ‘금강산 댐 공사를 통한 북한 수공 음모’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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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반이 잠기고 국회의사당이 그 돔 지붕만 남기고 물에 찰랑이는 모습을 그림으로, 미니어처로 보여 주는 가운데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은 높아졌고 정부는 10월 31일 건국대학교 각 건물에 있던 학생들을 강제진압, 체포한 뒤 무려 1288명을 구속시켰다. 말이 1288명이지, 이들을 조사할 경찰서조차 북새통을 이룰 정도의 사상 최대 구속 사태였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거창한 이름이 붙는다. “공산혁명분자 건국대 점거 난동 사...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그때 일이 생생합니다. 당시 '탁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짤막한 신문기사까지 기억해요.
87, 88년도의 명동과 퇴계로 충무로 일대에는 최루가스가 일상이었습니다.
생생한 글이고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건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때 일이 생생합니다. 당시 '탁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짤막한 신문기사까지 기억해요.
87, 88년도의 명동과 퇴계로 충무로 일대에는 최루가스가 일상이었습니다.
생생한 글이고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건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