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기쁨과 슬픔, 이보다 적나라할 수가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08/19
영 탐탁지 않은 영화제였다. 광고를 할 땐 언제고 예매를 하니 확정이 된 건지 아닌지 확인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영화제 홈페이지 문의창구로 수차례 문의해도 답은 없었다. SNS 채널엔 항의하는 이들로 댓글이 가득 찼다. 며칠 뒤 어렵게 연락이 닿았으나 예매가 누락됐다는 답만 돌아왔다. 사정을 말한 끝에 겨우 예정대로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었다. 상영관에 도착하니 기술상의 문제로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쯤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영화제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나는 잔뜩 뿔이 난 채로 상영관에 들어갔다.

내 마음이 돌아서기까진 딱 두 시간이 걸렸다. 아주 멋진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기분도, 분위기도, 보는 이의 마음 전체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만한 영화였다. 그 영화를 내게 전해준 이 영화제가 나는 몹시 감사하게 느껴졌다.

지난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2022 유럽영화제 이야기다. 이 영화제에서 본 영화는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다. 한 소녀의 무고로 망가진 교사의 삶을 다룬 영화 <더 헌트>로 한국에도 유명해진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신작으로, 이 영화에 이어 덴마크 국민배우 매즈 미켈슨과 합을 맞췄다. 도대체 영화가 어땠길래 나는 이 영화제의 모든 실수를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었나. 여기 그 썰을 풀어본다.
 
▲ 영화 <어나더 라운드>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지루한 수업, 망가진 인생

주인공은 고등학교 역사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분)이다. 그의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의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은 대놓고 휴대폰을 본다. 대놓고 옆 사람과 대화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소심한 마르틴은 제지하지 못하고 그냥 홀로 수업만 할 뿐이다.

학생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마르틴이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는 맥락 없이 책만 줄줄 읽어대는 그의 수업에 한 학생이 대놓고 지적하는 일까지 빚어진다. 급기야 학부모들이 마르틴을 소환해 수업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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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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