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오브파이 ㅣ 떠날 때는 말없이
2023/09/11
1884년, 영국에서 호주로 항해를 하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다. 가까스로 선장, 항해사, 선원 그리고 선원을 보조하는 17살 견습생이 구명보트에 올라탄다. 이들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통조림 몇 개와 보트에 고인 빗물로 버티지만 결국에는 아사 직전에 다다르게 된다. 선장은 결국 네 사람 중 한 명을 잡아먹기로 결정한다. 희생양은 17살 견습생이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파커'다. 그의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은 얀 마텔의 << 파이 이야기 >> 를 읽었거나 이 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라이프 오브 파이 >> 를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얀 마텔의 << 파이 이야기 >> 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소설보다는 영화를 통해 먼저 이 이야기를 접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또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가 숲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도 소년 파이가 오열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울었다. 오열하는 소년 때문에 운 것은 아니다. 떠날 때 잘 있어라, 라는 인사도 없이 냉정하게 떠나는 호랑이 때문에 울었다.
실룩실룩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호랑이의 뒤태가 그렇게 슬플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랑이의 똥꼬를 보다가 그만(그래요, 호랑이의 국화무늬 똥구멍을 보다가 울었습니다. 아, 저토록 슬픈 똥구멍이라니). 흙흙흙. 호랑이는 표류 기간 동안 서로 동거동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