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과 드래곤과 돌아오지 않는 세계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4/13

규칙에 따라 역할을 나누고 마스터가 설정한 이야기를 따라가며 주사위로 판정을 하고 즐기는 TRPG로 출발한 던전즈 앤 드래곤즈(이하 디앤디)는 현대 롤플레잉 게임의 시조인 동시에 여전히 엄청난 숫자의 팬들이 향유하는 IP로 건재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건재하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다. TRPG는 최신판이 정식 한글판으로 나오긴 했으나 번역이 고르지 못하다는 평이 많고, 디앤디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이 누구나 알 만한 주류가 된 적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발더스 게이트 같은 명작이 제법 많기는 하나, 인기 모바일 게임이나 젤다 시리즈만한 힘을 가진 게임은 적어도 요즘은 없는 것 같다. 인지도면에서 최전성기를 달린 시기라면 역시 캡콤이 만든 아케이드 게임이 오락실에 보급되었을 때가 아닐까? 콘솔 게임 드래곤즈 크라운이 그 명맥을 잇는 듯 보이긴 했지만, 아케이드 게임 디앤디와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재미있진 않다. 매번 똑같은 짓을 하는데도 악당들을 몰아서 두들겨패고 약점을 마구 공략하는 손맛이 덜한 탓이다. 그래서 요즘 다시 해봐도 디앤디 관련 콘텐츠는 과거로 돌아갈 수록 더 맛깔나고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와중에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새로 나왔다. 반가운 것보다 걱정이 앞섰다. 과거에도 영화화 시도가 있긴 했지만 다 망해버린 탓이다. 게다가 판타지 영화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라는 세기의 대걸작이 도리어 저주로 불릴 정도로 좋은 작품이 잘 나와주지 않는 터라, 이것도 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생각했다. 티저를 봐도 그저그런 영화에서 대충 웃기는 부분만 모아놓은 냄새가 풀풀났다. 역시나 망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개봉을 하고 보니 예상과 달리 평이 아주 좋았다. TRPG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물론이고 평단이나 일반 관객도 만족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마니악한 팬층이 있는 게임의 영화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다. 그래서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겠구나 싶어 볼 사람을 찾아봤는데, 딱...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135
팔로워 2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