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지중해 ②> 발레리는 왜 그 바람 속에 누워 있나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0/11
발레리가 묻혀 있는 세트의 해변 묘지. wikimedia common


지중해의 날씨는 남쪽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서쪽 대서양을 출발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는 바람에 지배됩니다. 사하라의 바람은 봄부터 가을까지 지중해에 영향을 미쳐 눈 부신 햇빛, 덥고 건조한 공기, 여행자들이 반할 수밖에 없는 푸른 하늘을 보여줍니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아조레스 제도 상공의 대서양 공기가 저기압 날씨를 가져옵니다. 이 바람들이 수천 년간 지중해의 농사를 풍성하게 했고, 상인들과 군인들의 뱃길을 열어주거나 방해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땅에 부는 바람을 계절과 방향에 따라 ‘높새바람’, ‘하늬바람’ 같은 이름을 붙였듯 지중해의 바람에도 다양한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이 바람들은 여러 작가와 시인,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로코’는 봄에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입니다. 1788년 이탈리아 여행길에 올라 3월 초 나폴리에 도착했던 괴테는 “지금은 남동풍인 시로코가 분다. 바람이 더 강해지면 항구 주변의 파도가 흥미로워질 것이다”라고 시로코의 강력함을 남 이야기하듯 썼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나폴리를 떠나 시칠리아에 도착한 괴테는 이곳에서 제일 높은 에트나산 화산 구경에 나섰다가 강풍에 분화구로 밀려가지 않으려고 주저앉은 채 엉금엉금 움직여야 했습니다. “코뿔소의 껍질도 벗겨낼 것처럼 사납다”는 사하라의 강풍. 괴테는 그 강풍의 끝자락을 시칠리아에서 제대로 경험한 겁니다.
   
카잔자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엄청난 갈증으로 으르렁대는 검푸른 바다는 아프리카 해안까지 펼쳐져 있었다. 뜨거운 남풍 리바스가 수시로 불었다. 멀리 작열하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라고 썼고, 프랑스 소설가 구스타프 플로베르(1821~1880)의 글에는 봄에 사하라에서 이집트 쪽으로 불어오는 ‘캠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략) 캠신 바람을 맞으며 낙타를 타고, 카페에 들어가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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