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감과 부조리 의식 - 이상의 시 「오감도」 깊이 읽기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7/29
이상의 시 「오감도」

허무감과 부조리 의식 - 이상의 시 「오감도」 깊이 읽기

이상의 시 「오감도」가 언어적 문법에 의해 ‘씌어’졌다기보다는 자의식의 문법에 의해 ‘조합’된 아나그램의 기호체계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도출해볼 수 있다. ‘아해’는 지시 대상으로서의 ‘무서운 아이’일 수 있으며, 반면 말하는 주체로서의 ‘무서워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아나그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가 동일인이어야만 한다. 

이처럼 대상으로서의 아이와 주체로서의 아이가 동일인으로써 시적 화자의 자의식 세계를 표상하는 존재라는 점을 전제하였을 때 “-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와 같은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모순어법의 기호체계가 왜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의식의 기호들로 조직된 이러한 텍스트를 만약 언어적 문법에 따라서만 해석하려 한다면 이 시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배척당하였던 것처럼 황당한 말장난에 불과하고 만다. 이 시를 이상이 자신의 불안 심리를 고도의 기호적 논리에 의해 의미화한 텍스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13인’역시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해체되고 파편화된 시적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된 기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상은 수학과 건축학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시 창작 과정에 과감하게 적용시킴으로써, 그야말로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 창작기법은 관습적인 언어 문법을 완전히 해체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이를 문예미학의 측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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