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한 옹호
낙태, 그러니까 인공 임신중절에 대한 논쟁은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상당히 파편적이고 '도덕'과 관계된 예민한 사안으로 취급받고 있다. 초등학교 때였나 학급에서 토론수업을 했던 게 기억나는데, 주제는 당시 가장 핫했던 '줄기세포 연구로 인한 여성 난자의 의학적 활용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와, '낙태는 허용되어야 하는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자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는 아직까지도 여러 학급이나 학원 등에서 심심찮게 소환되는 주제인 것으로 아는데, 거기 나오는 대답이라봐야 뭐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혹은 자유 중에 뭐가 더 중요하나 그런 것들이겠지.
주디스 자비스 톰슨의 "낙태에 대한 옹호"는 1971년 출간된 논문으로, 임신중절을 둘러싼 수많은 윤리적, 철학적, 여성주의적 논쟁의 초반부에 위치해 있다. 이것이 이제야 한국어로 번역된 것인데, 해당 논문을 출간/번역한 전기가오리 출판사는 책의 뒤에 역자인 이혜정 선생의 논문을 함께 실어 놓았다. 이혜정에 따르면 임신중절을 둘러싼 입장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물론 태아는 소중하니 임산부가 죽든 말든 무조건 낙태는 안된다는 보수주의 입장은 제외하고) 이는 다음과 같다.
1) 자율성 옹호 이론: 여성주의 도덕 이론에 입각해서 임신중절을 바라보며, 자율성을 옹호하는 철학자들. (톰슨, 잉글리쉬, 오버럴)2) 평등 이론: 자율성 옹호를 비판하면서 여성주의 도덕 이론을 적용하는 이들. (스미스, 재거, 맥키넌, 마르코비츠)3) 보살핌 관계 이론: 여성적 윤리 이론에 의거하여 임신중절을 바라보는 여성주의 윤리학자들. (길리건, 나딩스)
이 정리에 따르면 책의 저자인 톰슨은 첫 번째 입장에 속하는 이로, 여성주의 도덕 이론에 입각하되 임신중절을 어디까지나 '자율성'의 측면에서 정당화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