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기 좋을 때

이상희
이상희 · 인류의 진화
2024/03/06
"아기를 언제 낳는 것이 제일 좋을까요?”

커리어의 문턱에 선 후배들이 가끔 내게 묻는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답을 듣게 된다.

“대학원 다니면서 과정 수료한 다음 학위 논문을 쓸 때 낳으면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좋을 것 같아요.”
 “대학에서 직장을 잡은 후 조교수 시절에 낳으면 'stop the clock' (테뉴어 심사에서 평가하지 않는 일 년을 넣어주는 제도) 받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테뉴어까지 받고 편한 마음으로 부교수 시절에 낳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내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사실은 “아기를 언제 낳아야 경력 단절이 없을까요?”라는 뜻이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학위 논문 쓸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조용히 앉아 논문만 쓰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근무 시간의 제약이 없이 순전히 자유롭게 시간을 쓴다면 오히려 그 자유로운 시간과 관심이 온통 아기한테 가기 때문에 의외로 논문을 제시간에 끝내기 힘들다. 어쩌다 보면 영영 못 끝낼 수도 있다. 커리어 진입로 자체가 막히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잡을 때까지 아기 낳기를 미루는 경우도 많다. 신입 교수 환영회나 오리엔테이션에 가면 임신한 신임 교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임신한 사실, 출산 계획을 취업 면접 때 밝히느냐 마느냐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곳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는 임신, 출산이 채용 여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조교수 시절에 아기를 낳는다면 출산 휴직 및 육아 휴직을 받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출산과 육아 휴직은 끝나지만, 육아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 세계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아기를 낳게 된 호모 사피엔스다. 계속 시간에 쫓기다 보면, 연구 주제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테뉴어를 제 때 못 받을 수도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테뉴어 심사 시기 자체를 미룰 수 있지만, 아기가 생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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