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내인생 ㅣ 우주의 고아

악담
악담 · 악담은 덕담이다.
2023/09/17
개 같은 내 인생 크리테리언 콜랙션 커버
고1 때 머리를 삭발한 적이 있다. 그것도 새벽 한밤중에 말이다. 일회용 면도기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는데 머리에 난 여드름(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에라 모르겠다,잠이나 자자. 

다음날,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형이 내 민머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명소리에 어머니가 뛰어오고 누나가 달려왔다. 비명에, 비명에, 비명을 더하니 이런 것이 아비규환이로구나. 에혀. 처음에는 가족의 호들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고서야 가족의 이상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면도기로 밀다가 터진 여드름 상처 때문에 머리에는 온통 피딱지가 붙었고 핏줄기는 굳어서 빨강머리 대머리 소년이 된 것이다. 피딱지 붙은 민머리를 보고 있자니 가뭄으로 인해 밑바닥을 드러낸 강바닥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찰랑찰랑한 물결을 걷어내자 드러난 것은 황폐한 자갈밭이었다. 

문제는 이 꼬라지로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  심란한 마음에 어물정거리다가 지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중이병-스러운 기질이 있던 나는 지각을 해도 항상 교실 앞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도 나는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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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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