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2/05/08


어릴 적 아버지와의 기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아버지의 지인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터널 몇 개를 지나고 휴게소에 들러 남자 화장실을 쫄랑쫄랑 따라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다. 무뚝뚝한 사내였던 아버지가
머릴 쓰다듬어주신 첫 번째 순간이었다

터널 밖이 환히 보이는 터널은 없어요
해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터널이지만 터널 같지 않은...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때 말없이 웃으며 쓰다듬어주시던 손길.

터널의 불안은 힘이 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의 공포는 힘이 된다

터널을 벗어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밖이 보이는 터널 속에서
마법처럼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뛰쳐나가 만질 수도, 풍경에 파묻힐 수도 있는 실재하는 절망과도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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