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의 <혼불>을 읽고
2024/06/02
1. 혼불의 문체나 한뜸 한뜸 바느질 하듯 언어들을 엮는 솜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찰떡처럼 혀에 달라 붙는 느낌을 준다. 스토리 텔링 면에서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정밀한 묘사가 탁월하다. 최명희 작가가 이 작품을 혼신을 기울여 썼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닌 것 같다.
2.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문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리얼리즘 소설이상으로 일종의 풍속과 관련된 정보를 엄청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100년도 안 되는 세월 사이에 다 잊혀져간 조선의 옛 풍속들이 작가의 세세한 필력에 의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 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식민지 해방과 6.25 전쟁, 그리고 4.19와 5.16 군사 혁명, 빠른 경제 발전과 80년대의 민주화 혁명, 20세기 말엽의 IMF 등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면서 여러 모로 전통 사회와 단절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전통 규범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여전히 과거의 규범이 잔존한 경우도 있다. <혼불>을 읽으면서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3. 100년도 안 되는 시절이지만 그 당시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일단 식민지 치하의 조선은 너무나 가난하다. 일체의 수탈 경제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