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경 쓰는 말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3/10
필요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골라서 쓰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 즉, 작가나 번역가 같은 사람은 언어 생활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나 자신도 그럴 뿐더러 주변에서 언어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도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쓰는 연장의 모양과 기능이 자꾸 바뀌는 것을 반기는 기술자는 적을 테니 자연스러운 경향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적인 기술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존경을 받는 작가들도 남에게 험악한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습을 본 탓이다. 비속어를 작품에 쓰는 거야 자기 작품이니 자기 마음이지만, 내가 본 것은 커뮤니티에서 덧글로 남긴 말이라 충격이 컸다. 영어권에서 어쩔 수 없이 욕설을 언급해야 할 때 ‘F워드’라고 표현하는 것 비슷하게 쌍욕이 인터넷에서 ‘약간 변형된’ 단어를 쓰긴 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별로 좋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말을 고를 거라면 그냥 비속어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단어를 쓰면 될 게 아닌가.

언어와는 별 관련이 없는 과였던 후배 하나도 나와 무슨 얘기를 할 때 비속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억양을 억눌러가며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떠올린 생각도 비슷했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일 정신이 있으면 다른 단어를 쓰란 말이다.

양식 있는 두 사람이 그런 말을 굳이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세 가지 정도가 주요할 것 같다. 일단 그 자리가 유행하는 비속어를 써도 되는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 생각이 맞긴 하니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지만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비속어를 쓰는 게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이 어떤 표현을 강력하게 하고 싶은데, 강도가 적당히 세면서 밋밋하지 않은 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구를 강력하게 욕하고 싶을 때 욕설을 고르고, 분노의 표현을 더 강화하고 싶다면 욕설의 앞뒤로 ‘미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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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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