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모으기의 난해함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6/16



피규어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 조그만 여행 기념품 같은 것 말고, 보편적으로 ‘피규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만화/애니메이션/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의 형상 얘기다.

어떤 소비나 수집도 비슷할 텐데, 처음에는 수집한다는 생각으로 산 것도 아니었고, 거액을 들이거나 아주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피규어를 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뽑기에서 적당한 것을 뽑거나 일본 여행을 갔다가 평소에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의 관련 상품으로 손바닥만한 것을 기념 삼아 사오는 정도였다.

이 정도 선이라면 어지간히 개수가 많지 않은 이상 수집이라고 주장하기도 좀 뭣한 감이 있고,  공간적으로 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전시할 것만 내놓고 나머지는 상자에 몰아넣어 적당히 쑤셔박아도 무방하고, 심리적인 제약이나 저항감도 거의 없다.

문제는 이보다 큰 것들에 손을 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더 큰 피규어에 입문하게 되는 계기는 여러가지가 있을 테지만, 나는 경품급 피규어가 결정적이었다. 경품 피규어란 크레인 게임 같은 부류의 게임형 자판기에 들어가거나 추첨 이벤트 등으로 주는 피규어인데 그냥 유통되는 경우도 많고, 요즈음에는 경품 피규어와 비슷한 사이즈(높이 22센티미터 가량)에 썩 나쁘지 않은 품질로 제작되는 것들도 많다. 나는 이것들을 ‘경품급 피규어’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피규어의 특장점은 놀라운 가성비다. 누가 봐도 얼굴 조형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문제는 딱히 없이 제법 크고 품질이 나쁘지 않으면서 가격은 1만원 중반에서 3만원 내외라, 보자마자 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런 거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고급 피규어들은 20만에서 30만원을 호가해서 ‘돈도 없고 둘 데도 없어!’라는 이유로 신포도 취급해야 했는데, 여기서 돈 문제가 사라지고 나니 공간은 어떻게든 만들면 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리하여 나는 적당히 넣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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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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