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최하층에서 불평등을 외치다 -3-

글 퇴고할 시간도 없이 일하러 가야 하는군요. 인생 증말...... 😤🚬

 제가 운 좋게 언론지에 글을 쓰게 된 지 이제 반년쯤 되어갑니다. 정치권에서 내는 메시지, 혹은 신문 기사들이나 댓글 반응, SNS 등을 보다 보면, 곳곳에서 대표성의 불평등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어딜 가나 하층 노동자 문제가 주요 의제가 안 돼요. 단 정치 쪽에서 다루질 않으니 어느 공론장을 가도 노동 이야기는 없거나 왜곡됩니다. 진보성향 채널을 가도 젠더나 비건, 환경 같은 주제가 우선이고, 그나마 노동 문제를 말하는 노동자도 대기업 정규직들인 경우가 많지요. 대한민국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데 대표성이 이렇게 부족한 건 말이 안 됩니다.
 
 저는 이 구조를 올라가보면 대한민국의 명문대 선호사상을 피해갈 수 없다고 봅니다. 실제 인터넷에 수많은 어그로 기사들이 제목 앞에 명문대를 갖다 붙입니다. ‘고려대생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연세대생이 도배사가 된 이유는?’, ‘서울대생 논객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 이런 류의 기사가 제대로 터지면 한강 의대생 사건이 되는 거구요. 주요 언론사가 대부분 서울에 있다는 문제. 주요 언론사 기자들 중 서울권 대학 졸업생이 많다는 문제. 그로 인한 편향 문제가 분명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덮어놓고 명문대를 좋아합니다. 명문대생이 과하게 선호 받고, 과하게 대표하는 담론장은 실제 다수가 겪는 불평등 문제를 축소하거나 아예 은폐합니다. 그만큼 당사자성이 부족하니까요. 불평등의 원인 중 이런 대표성 편향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이미 2천년 초반부터 이런 식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불평등을 늘였느냐 줄였느냐 논쟁은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하도 부동산 떡밥이 큰 지라 대체로 늘였다에 더 추가 기울더라구요. 저는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보이는 두 가지 정책을 꼽아보려 합니다. 부울경 메가시티와 제조업 르네상스인데요. 둘 다 지역균형 발전 문제와 맞닿아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수준입니다. 절반이 넘는 인구와 95%의 대기업이 수도권에 묶여 있죠. 이 상황이 낳는 부작용은 너무 많이 언급되니 생략하구요. 마산 주민 입장에서 서울이 정말 부러웠던 거 딱 하나 꼽으라면, 교통망입니다. 정말 안 가는 곳이 없더라구요. 경남은 같은 구 안에서도 교통 문제로 그림의 떡인 직장이 많아요. 어디 회사 좀 찾았다 싶으면 어디 면 어디 리. 이런 곳은 네이버 지도 검색하면 아파트 이름은 없고, 무슨 산, 어떤 저수지 이름만 잔뜩 있는 곳에 박혀 있어요. 수도권에서 지옥철이네 뭐네 하는데, 지방에선 그게 복에 겨운 비명으로 들립니다. 이 지역 격차 문제를 메가시티가 상당 부분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조업 르네상스’를 얹어주면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방 제조업 전반이 노후화되어 있어요. 종사자 대다수가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재 사고율은 좀처럼 줄어들질 않죠. 현재 창원엔 스마트 공장이 계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질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특히 경남은 2015년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실업자가 나왔기에 실질 공포가 큰 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추세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제조업의 필요 역량이 ‘제조’에서 ‘제어’로 넘어가면서, 고부가 가치 산업 교육이 이루어지고, 저숙련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면서 최저임금 그보다 못한 처우가 개선될 것을 기대합니다. 산재 감소 또한 빼놓을 수 없구요. 사람이 직접 투입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위험한 작업을 덜하게 될 테고, 여기에 직접 제조 인력이 줄어든 만큼 안전 점검인원을 확충한다면 산재 비율이 확 줄어들 겁니다. 
 
https://alook.so/posts/dztYqW - 지방 용접공이 기대와 우려로 본 ‘제조업 르네상스’

얕은 지식으로 빈부격차, 지방, 학벌, 일자리, 불로소득을 오가며 마구 떠들었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야겠네요. 제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말인데요, 결국 기승전일자리입니다. 좋은 일자리야말로 온갖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키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럼 좋은 일자리의 정의부터 내려야겠지요. 제 생각에 핵심은 ‘노동자가 향상성을 가질 수 있는지, 향상된 만큼의 대우가 따라오는지’ 여부입니다. 이게 빠져 있으면 임금이며 워라밸 같은 조건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회사에 와서 벽보고 앉아있는 조건으로 연봉 1억 준다고 한들. 사회적 가치창출도 없고 노동자도 일에 가치를 전혀 못 느낄 겁니다. 제가 한국 노동 연구원 토론 때, 지금의 지방 제조업은 전태일 열사가 일하던 평화시장만 못하다는 말을 해서, 참여자 분들이 기겁을 했습니다. 온갖 맥락을 다 자르고 저지른 말실수였습니다만. 그때도 발언 핵심은 향상성이었어요. 그 당시엔 적어도 향상성. 계단식 상승 구조가 존재했거든요. 물론 여공들이나 소년소녀들은 그 구조에서 배제되었지만요. 
 
그럼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많이 만들까요? 원론적이지만 결국 노사 타협 밖에 없다고 봅니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가진 숙련을 제대로 대우하겠음을 약속해야 합니다. 숙련이 대우를 받으면 향상성이 따라오고, 그 향상성이 가치를 만들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노동자 측 역시 지금의 정규직 모델이 고용 보장과 연공급제의 과보호 속에서, 향상성을 상실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울러 사회 전체가 필수 노동의 가치를 재고해보았으면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노동을 시장관점에서만 해석하는 시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노동 존중이 없어요. ‘시장 가치가 적은 일이니까 대우를 그만큼밖에 못 받는 건 합당해’라는 식이죠. 우리는 하루하루를 필수 노동에 빚지고 삽니다. 간단한 상상 한 번 해보지요. 배관공이 하루만 없어져도 화장실에서 못 볼 꼴 다 볼 겁니다. 불금 다음날 일하는 청소 노동자가 없다면 거리는 널찍한 쓰레기장이 되겠지요. 전국 간호사들이 단 하루만 일을 안 해도…… 이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이렇듯 사회근간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은 시장 가치가 아니라 일의 중요성만큼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위에서 말한 대표성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은 산재 사망 때나 소환됩니다. 구성원 비율로 보면 이들이 훨씬 다수인데도 소수자 문제마냥 다루어지고 있죠. 수많은 필수 노동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여 주고 질릴 만큼 문제제기를 하게 만들어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야말로 힘들다고 말할 자격을 넘치도록 가진 분들이니까요.
글을 쓰고 나니까 더 뵙고 싶네요, 의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