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교만하시군요.

악당출현
악당출현 · 영화라는 프리즘으로 악당을 요리조리.
2023/01/02
레니 니펜슈탈 · 1934 · 의지의 승리
교만한 사람이 싫었다. 괜히 남의 인생에 자격도 없는 발을 들이미는 사람들이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들 등등. 특히 권위를 등에 지고 오만한 눈빛으로 타인을 깔보는 사람들은 상종하기도 싫은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권위를 발판으로 우뚝 선 교만 앞에서는 쉽게 움츠러들었다. 쉽게 말대꾸도, 부정도, 저항도 시도할 수 없었다. 나이와 혈육이라는 권위에 기대어 인생의 조언을 남발하던 친척이나 공권력에 힘입어 맘대로 일을 진행하던 소대장의 말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교만의 핵심은 수직성이다. 타인의 삶을 심판하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할 수 있는 일은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쉽게 이뤄질 수 없다. 사람 위에 군림하며 사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일은 모두 낙차가 필요하다. 권력과 부, 지식의 낙차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을 지배하고 선동한다. 우리는 그 거대한 낙차를 권위라고 부른다. 결국, 교만은 권위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1934년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촬영한 <의지의 승리>는 권위에 의지한 교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지의 승리>의 감독인 레니 리펜슈탈에게 주어진 사명은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편집하며 가상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쌓아올린 권위의 정점에 히틀러가 올라서서 전체주의와 독일 팽창을 울부짖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무시무시한 교만을 위해 레니 리펜슈탈은 오프닝부터 거대한 낙차를 마련했다. 높은 계단이나 까마득한 건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바로 하늘이었다.
레니 니펜슈탈 · 1934 · 의지의 승리
<의지의 승리>의 도입부는 구름 사이를 유영하는 비행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천천히 하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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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출현」은 영화 속 악당을 통해서 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들을 장식하는 다양한 악인을 바라보며 과연 삶 속에서 악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지켜보고자 합니다. 악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악당의 서사를 뒤에서 찬찬히 따라가면서 그들의 면면을 요리조리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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