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단추(손택수) ㅣ 묘와 관 사이
2024/06/26
꽃단추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ㅡ 손택수 시집 < 나무의 수사학 > 실천문학사
다들 경험하셨으리라. 애인과의 첫날밤, 떨리는 손끝으로 애인의 실크 블라우스에 달린 단추를 푸를 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 들뜬 마음에 조금이라도 빨리 풀어헤치고 싶으나 그럴수록 쉽게 풀어지지 않던 그 하얀 단추. 아직도 생각난다. 명주실로 짠 실크의 감촉이 아이스크림보다 부드러웠다는 사실. 손택수 시인의 < 꽃단추 > 를 읽을 때마다 몇몇 장면들이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