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2024/03/19
2021년 8월 JTBC 바라던 바다에서 선우정아(존칭 생략)의 도망가자(2019년 발표)를 듣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거짓말이다. 과거형이 아니다.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해 수십 번 돌려보고 음원으로 듣고 그러고 있다. 해독제 같은 가사들. 낭떠러지 절벽에 뒤꿈치를 걸어두고 지르는 듯한 결사적인 목소리, 떨림, 불안, 절망, 체념, 겹겹이 쌓인 어둠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감정과 기억의 생채기들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수액을 꽂고 산소호흡기를 채우고 체온을 내리는 주사를 놓고 있었다. 헐리웃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질극에서 범인이 만약에 한국 정서를 안다면 이 노래를 틀어주면 울면서 인질 풀어주고 자수할 것 같은 파급력이 있었다. 너 잘못도 있으니까 니가 좀 참아라.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온오프라인 360도 둘러싸며 이 따위 소리만 해대는 각박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얼어붙은 피부를 데우며 먼지를 씻겨 내리는 조도 낮은 집 늦은 저녁의 고요한 샤워 같았다. 흐느낌과 울음을 대신 감춰주는. 어디로 돌아와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도망부터 가고 아주 가버리진 말자라는 다짐을 읊조리게 해 줬다. 개인의 상처는 개인의 심장 개수와 같을 ...
Copywriter. Author.
『저항 금기 해방-여성영화에 대하여』, 『너의 시체라도 발견했으면 좋겠어』, 『도로시 사전』, 『광고회사를 떠나며』, 『저녁이 없는 삶』 등을 썼다.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sk0279@naver.com
@이윤희 시인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