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잊지 않는 서점, 핀란드의 아카데미넨

Clara Cho
Clara Cho · 휘뚜루마뚜루
2023/04/08
핀란드의 NATO 가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헬싱키의 아카데미넨 서점을 떠올렸다.

서점에서는 관광지 이면에 있는 도시의 다른 얼굴을 읽어낼 수 있다. 어떤 도시에 중요한 요소가 된 서점이 있다면 그 서점은 도시와 함께 변화를 겪어내며 살아남은 곳이기 때문이다. 헬싱키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유명한 디자인 제품의 편집샵과 백화점이 위치한 에스플라나디 거리에는 1969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카데미넨 서점이 있다. 그곳에서 핀란드인들이 겪어온 '전쟁'과 지켜온 ‘빛’을 볼 수 있었다.
아카데미넨 서점 입구, 2015년 직접 촬영

  핀란드의 짧은 겨울 해는 단순히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전 10시 쯤에서야 해가 뜨고 오후 4시면 다시 캄캄해지는데, 대체로 날이 흐리기 때문에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에도 파랗고 환한 하늘을 보기란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어둠 속에서 거의 24시간 지속되는 극야를 견뎌야 한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종일 머리가 멍하고 몸이 축축 늘어져서, 핀란드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1위인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빛이 결핍된 환경이니,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빛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카데미넨 서점 역시 핀란드인들의 빛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건축가 알바 알토는 건물 천장에 커다란 창을 내어 공간 전체에 자연 채광을 최대한 끌어들였다. 천창 아래 건물의 중앙부를 비워두어 모든 층에 골고루 햇볕이 도달한다. 머리 위로 하늘이 트여 있으니 흐린 날에도 보통의 실내보다는 밝고, 맑은 날 서점에 들어서면 책으로 가득한 빛의 전당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인간 사유의 산물인 책을 모아둔 서점의 천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라니, 마치 플라톤의 ‘태양의 비유’를 건축학적으로 구현한 것 같이 느껴진다.  

플라톤은  ‘좋음’,  즉 선(善)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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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마뚜루 제너럴리스트. 10년 내에 전원주택을 짓고야 말겠다는 야심으로 살아가는 프로 개키우미.생각나는 것을 그때 그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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