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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환상을 물고 빠는 이 쾌락에 원도 한도 없이 탐닉할테다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6회>
너라는 환상을 물고 빠는 이 쾌락에 원도 한도 없이 탐닉할테다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6회>
현실에서 장밋빛 로맨스가 진행될 가능성 0 퍼센트인 남자이기에 가장 완벽한 인생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을 거야, 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머리속 환상으로 지은 유리의 성 안에 남자를 고이 모셔놓고, 또는 가둬놓고 지금 여자의 뇌를 흠뻑 적시고 있는 설탕즙의 공급 유효기간이 끝나는 그 날까지 애지중지 물고 빠는 쾌락에 원도 없이 한도 없이 탐닉해 볼 수 있을 거야.
어차피 현실은 시궁창, 진창이었다.
연애에서 가장 설레는 시간은 상대가 내 마음을 과연 받아줄 것인지 여부를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그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상대가 나를 바라보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은 한강 불꽃 축제에서 오색찬란한 불꽃이 밤하늘에 터지는 황홀한 절정이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현실의 연애는 한강변에 미어터지게 모인 인파 속을 걸어가 지하철이나 버스나 택시나 한참을 기다려서 차를 빼야하는 인근 주차장을 거쳐 집에 돌아가는 고달픈 귀갓길이었다.
귀갓길에...
남자는 반하지 않은 여자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5회
남자는 반하지 않은 여자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5회
전날 밤에 남자에게 보낸 카톡 앞,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숫자 1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상태는 다음날 오전까지 요지부동이었다.
30분에 한번씩, 아니 어쩌면 10분에 한번씩 전화기를 열어서 태산처럼 끄덕 않는 숫자 1을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는 어느 시점부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 언저리가 아파왔다.
여자는 50살이 되기도 전에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혈관 확장 스탠트 시술을 한 사람이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마다 가슴이 뻐근한 이 증상은 없어지지 않는 숫자 1 때문인지, 아니면 시술한지 오래된 혈관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전조인지 혼란이 왔다.
내가 보낸 톡을 왜 안 읽는 건가? 왜?
2023년 서울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 중에 전날 저녁부터 그 다음날 오후까지 핸드폰을 열어 문자나 카톡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의 고의적임이 분명한 ‘안읽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여자는 난이도 최상 킬링 문항 앞 수능 수험생처럼 난감했다.
난감해...
실수를 하지 않을만큼 성숙했다는 착각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4회
14살 연하에게 반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3회
14살 연하에게 반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3회
남자는 여자보다 열 네 살이 어렸다.여자는 66년생이고 남자는 80년생이었다.앞자리 숫자가 두 개 차이였다.여자가 여기 쓴 이야기를 어느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은 끝에 나이 얘기를 했다고 상상해보자.아마 친구는,"미친년아. 그 얘기를 진작 했어야지. 유리상자 속 인형이 어쩌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말고!"라며 허파가 끊어지도록 웃을 것이었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두 개 젊은 남자를 여자가 다시 만난 건 사람들이 많이 온 어느 행사였다.여자와 마주친 남자는 원로를 대하듯 고개를 깊이 숙이고 깍듯이 인사했다. 여자는 아유,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젊은 남자 앞에서 나이 많은 여자가 떨법한 너스레를 기계적으로 읊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 끝나나, 지루해하다 중간에 적당히 빠져나갈 궁리만 했을 여자는이 날은 한 공간 안에 남자가 있는 이 자리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며 끝까지 앉아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리스본 강변에서 뜨겁고 황홀한 키스를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2회
생애 마지막이자 가장 완벽한 사랑 -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1회
빛과 어둠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 - 영화 <플로렌스>
빛과 어둠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 - 영화 <플로렌스>
영화 <플로렌스>는 역사상 최악의 소프라노 가수였던 실존 인물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의 이야기다.
열여덟살에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매독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한 플로렌스(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음치인 줄 본인만 모르는 음치다.
얼토당토않은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플로렌스는 매년 정기공연을 열었고 급기야는 카네기홀에서 독창회 무대에 올랐었다.
노래 재능은 형편없었고 음악을 향한 사랑만 뜨거웠던 음치는 어떻게 가수가 될 수 있었는가.
영화는 그녀의 열정을 아끼고 공감했던 주위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남편이자 매니저인 베이필드(휴 그랜트)는 호의적인 관객들을 모아 아내의 공연에서 박수치게 하고 신문에 악평이 나오지 못하게 봉쇄한다.
피아니스트 맥문은 처음에는 플로렌스의 황당한 노래 솜씨에 당황하지만 차츰 그녀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음치 노래에 맞춰 반주를 떠맡는다.
우리는 이 ...
부부라는 관계 그 속살을 탈탈 털어 끝장을 보여준다 - 영화 <맬컴과 마리>
부부라는 관계 그 속살을 탈탈 털어 끝장을 보여준다 - 영화 <맬컴과 마리>
어느날 밤 늦은 시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누군가 "요즘 본 영화중 최고"라고 추천한 걸 본
넷플릭스 영화 <맬컴과 마리>.
"너무 늦었으니 앞 부분만 잠깐 보고 내일 낮에 제대로 봐야지"
생각하며 틀었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정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끝까지 지켜봤다.
추천한 사람의 말처럼 나에게도 근래에 본 최고로 재미난 영화였다.
스토리 구성은 단순 심플이다.
러닝타임 1시간 40분 내내 커플이 싸우는 이야기.
집 안을 돌아다니고 집 앞 마당도 오가면서 남편과 아내가 두 시간 동안 말다툼을 한다.
아마도 내가 당시 부부싸움 중이라서 더욱 감정이입이 됐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맬컴이 성공적으로 영화 감독 데뷔를 한 시사회를 마치고 돌아온 밤,
남편 생애 최고의 날에 아내가 싸움을 걸어서 생애 최악의 날로 만들어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것은.
아마도 나는 영화 속 상황처럼,
그 얼마전 내 생일날 남편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터무니없이 성깔을 부려대서
...
비극의 역사에 사로잡혀 증오에 깔려 죽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