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인이다
2023/01/20
나는 주변인이다 / 휘수
서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문학 코너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한숨을 쉬며 철학 코너로 가곤 한다. 그리고 철학책을 집어 들고 더 오랜 시간을 보내다 한두 권 구매로 이어진다. 이러한 패턴은 부러 만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거의 무의식적인 패턴이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사람들의 발길이 제일 많은 베스트셀러 코너를 본다. 사람들의 잦은 손길 때문에 책장이 들려 있는 책들 몇 개에 나의 손길을 얹어본다. 다시 놓는다. 다른 것을 펼쳐본다. 다시 놓는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 서점을 나온다.
'젊거나 청소년 층은 이미 종이책을 읽지 않는 세대이며, 종이책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주제로 학동들과 토론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짧은 소통에 익숙한 세대가 비교적 긴 전화통화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뉴스도 읽었다. 그래선가 서점의 주요 테이블에는 짧은 글들과 가벼운 이미지들이 혼합된, 그리하여 더 가벼운 의미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자본의 축적과 자기 관리 및 건강에 관한 책들이 그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제 신선한 종이 냄새가 나는 활자의 시대는 심사숙고하여 탄생한 문자를 그리워하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만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서점을 둘러보는 내 발길은 결국 철학 코너에서 멈추는 게 아닐까.
그렇다. 나는 여전히 문자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수단을 좋아하지만, 글쟁이로서 나는 문자의 소통을 가장 사랑한다. 그래서 책 발간을 위한 원고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살펴보고 또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가끔 한동안, 혹은 오랫동안 원고를 쓱 치워버리기도 한다. '의미와 무의미'라는 수렁에 빠질 때다. 의미 없는 일을 하나 더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나를 붙잡을 때다.
어젯밤 두 개의 시를 다시 살폈다. ...
'나는 세상의 관심 밖에 있었다.'
여럿이 쓴 책 외 개인 출판은 달랑 시집 한 권.
내가 쓴 글을 씹어 먹고 후식으로 즐기다 덮고 잠.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좋아하는 편.
에세이, 독서논술 강사 역할과 친해서 지겨움.
아무려나, 글 쓰기만큼은 진심인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