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케빈에 대하여>의 피의 미술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5/13
미국은 워낙 다인종, 다문화로 이뤄진 사회다보니 보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은 미국 서민들의 생활을 따뜻하고 친근하게 묘사하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에 반해 지금 소개할 <케빈에 대하여>의 린 램지 감독은 잭슨 폴록,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등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을 활용해 미국사회로부터 폭력의 이미지를 끄집어낸다. 

<케빈에 대하여>의 원제는 ‘우리는 케빈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제목 속 케빈(이즈라 밀러)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아이다. 학교 친구들을 체육관에 가둬두고 무차별로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청소년 총기 난사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2003)처럼 사건 자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기보다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케빈의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가 아들의 악행을 회고하는 방식을 취하며 미국사회를 탐구한다.  

그런데 이 모성, 어딘가 불편하다. 모성이란 흔히 희생의 동의어처럼 인식되지만, 에바는 결코 자식을 위해 희생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행 작가로서의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케빈은 원했던 아이가 아니다. 세계 각지를 돌며 글을 쓰는 에바에게 임신은 곧 직업의 포기를 의미했던 탓이다. 린 램지는 여기서 모성과 같은 절대적 가치 이전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되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캐치한다. 그런 사회적인 환경이 총기 허용을 가능케 했고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했다는 거다. 

문화는 사회의 반영이니만큼 미술에서 해당 사회의 특징을 읽어내는 건 자연스러워도 <케빈에 대하여>의 린 램지는 의미를 부여하는 쪽에 가깝다. 에바의 방에 침입한 케빈이 세계 지도로 도배된 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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