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즈를 접는 일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4/05/23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속 강렬한 문장이다. 중학생 시절 나는 이 시를 무척 좋아했고 달달 외워냈다. 부러 암기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 거대한 권력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억압 그리고 폭력에 저항하는 대신, 개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탓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동시에 구시대적인 가치관-특히 여성에 대한-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나 지금에나, 나는 그 앞에서 전율하는 한편 마음 한 구석 서글픔을 느낀다.

 시인은 야전병원에서 거즈를 접던 자신의 모습을, ‘왕국의 음탕 대신에 고기에 비계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는’ 비겁과 등치시킨다. 여기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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