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양자 세계의 신묘함과 거시 세계 스펙터클의 결합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12/20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2020.

최근 본 타임슬립 영화 중 가장 창의적이었다. 가장 창의적이었다 말하기가 좀 부끄럽긴 하다. 영화를 다 본 후 이해하지 못한 구멍들이 마치 3월의 벚꽃처럼 머릿속에서 만개했으니까. 개인적으로 ‘양전자의 시간 역행 이론’은 처음 들어본 것이어서 <인터스텔라>의 ‘상대성 이론’ 과 같은 익숙함이 전혀 없었다. 물론, 꼬인 시간을 다룬 영화는 <테넷>이 처음이 아닌 까닭에 ‘타임 슬립’만 두고 본다면 그렇게 특별한 설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이유로 어떤 관객은 이 영화의 창의성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의성을 새로운 시도 같은 것으로 본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에서 보인 꼬인 시공간은 매우 창의적인 연출이었다. 서사는 두 개의 플롯 이상으로 진행되는데, 이 진행이 좀 독특하다. 사실은 하나의 플롯인데,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장치 혹은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장치(알고리즘) 때문에 둘 혹은 그 이상의 플롯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시간의 방향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며 교차점에서 충돌한다. 이 충돌 지점에서 관객은 놀라운 시공간적 경험을 한다. 대단한 경험이지만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하지는 못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대단한 영화다.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나면 줄거리가 꽤 익숙하다는 사실이 보인다. 첩보물이다. 위험한 무기를 손에 쥔 악당으로부터 주인공인 비밀기관 요원과 그의 조력자들이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위험한 무기는 다름 아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장치, ‘알고리즘’이다. <테넷>이 특별한 영화가 될 수 있는 건 바로 이 특별한 장치 덕분이다. ‘알고리즘’으로 인해 영화의 세계관은 매우 복잡해지고, 익숙한 줄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 <아이언맨>과 <트랜스포머>와 같은 영화들은 당시 최고의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는데, <테넷>의 영상은 이들보다 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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