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최초의 이세계 전쟁물인 이유
2023/11/06
클리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은퇴 후 복귀한 선수가 성공해도 클리셰지만, 다시 무너져도 클리셰다. 보통 전자는 드라마고, 후자는 현실이다. 다만 클리셰라는 단어로 뭉갠다면,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은퇴 번복의 첫 번째 특징은 신뢰의 배신이다. 팬이라면 선수의 복귀를 일단 환영하겠지만, 은퇴는 가볍지 않다. 거짓말처럼 돌아온 선수를 마냥 응원하긴 힘들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은퇴를 번복해 역작을 만들었다.
제패니메이션으로서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이례적이다. 초반부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음악을 거의 쓰지 않고, 대사도 적다. 이야기도 설정도 연출도, 전부 평탄하다. 아무런 훅이 없다. 스타일은 어떻게 봐도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중간중간 판타지가 삽입된다. 낯설 뿐이다. 왜가리가 말하면 오글거리고, 개구리 떼가 붙으면 징그럽다. 마히토의 꿈은 예언으로도 묵시록으로도 읽히지 못한다. 영화가 갈피를 못 잡는 듯하다. 리얼리즘이라면 판타지를 빼야 하고, 판타지라면 판타지를 설득해야 한다. 그게 클리셰다. 좋고 나쁨을 떠나, 필요한 클리셰다. 그러나 설득하지 않는다. 직설적인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과 달리,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제목처럼 물음을 던진다. 이상한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놀랍게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장르물이다. 그 유명한 '이세계물'이다. 스토리와 설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마히토는 특별한 피를 이었고, 스스로 머리를 으깰 정도로 담대한 용기를 지녔는데, 꿈에서 구조 요청을 받고, 야생 동물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떻게 봐도 수상한 탑이 근처에 있다. 그는 곧 다른 세계로 소환된다. 익숙한 영웅서사다. 그런데, 이세계물이란 생각이 안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