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만 읽고 있다.

박철현
박철현 인증된 계정 · 끊임없이 묻는 사람
2023/05/11
한국어 제목은 ‘비정근’으로 나왔다고 한다.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보통의 휴일날이었다. 달력을 뒤져 보니 아마 3월 26일(일요일)이 아닌가 싶다. 아침을 먹고 거실 식탁에 앉아 이것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웹소설 원고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축분이 열흘치 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 1화 분량(5천자) 이상은 반드시 써야 한다. 흔히 말하는 '라이브 집필'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식탁이 매우 지저분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 집은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거실 식탁에서 공부한다. 식탁은 6인용으로 안쪽과 바깥쪽에 셋 씩 앉을 수 있다. 식사할 때는 좁게 앉아서 먹지만, 공부할 때는 중간 자리는 비워둔다. 앉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안쪽의 오른쪽은 막내(초등4학년), 그 왼쪽은 셋째(중2), 바깥쪽 오른쪽은 둘째(고1), 그리고 마지막 남은 바깥쪽 왼쪽 자리는 올해 고3인 큰 아이가 앉는다.

일요일은 아이들도 쉰다. 다 놀러 나갔다. 와이프도 없다. 휴일의 경험상 모두 오후 늦게나 돌아올 것이므로, 글쓰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겠다. 잔잔한 음악, 밀크커피를 한잔 준비하고 식탁 바깥쪽 가운데 자리에 앉아 아이패드를 열어 글을 쓴다. 한 이삼천자 정도를 쓴 후 허리를 펴는데, 큰 아이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고3이니 어쩔 수 없다. 깔끔하게 치워버리면 보나마나 짜증낼 것이므로 일단 대충 겹쳐서 쌓아둔다. 그 때 눈에 띤 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이었다.

자연스레 추억에 젖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백야행>은 내가 일본에서 가장 처음 읽었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 학습 교재용으로 소설을 읽긴 한다.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쓴 <창가의 토토짱> 은 외국인 유학생 모두가 거의 필수적으로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백야행>은 내돈내산한 최초의 소설이었다. 그 때는 문고본이 아니라...
박철현
박철현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쓴다는 것>을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본업은 노가다.
16
팔로워 197
팔로잉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