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쓰고 싶을 때 나는 라면물을 올린다4] 죽은 개가 피안에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안치용 인증된 계정 · 작가, 영화평론가, ESG 담당 교수
2024/04/23
나는 스스로를 확장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정처 없이 배회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 그러곤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금욕하고 관습의 궤도 안에서 안주하고자 하며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욕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네.

Ich habe allerlei nachgedacht, über die Begier im Menschen, sich auszubreiten, neue Entdeckungen zu machen, herumzuschweifen; und dann wieder über den inneren Trieb, sich der Einschränkung willig zu ergeben, in dem Gleise der Gewohnheit so hinzufahren und sich weder um Rechts noch um Links zu bekümmern.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평생 키운 여러 마리 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은 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죽은 ‘스콜’이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한 살 터울의 형 ‘걸리버’와 같이 살았다. 아버지 유전자의 힘이 세서 그랬는지 두 녀석의 성격이 대조적이었다. 인간의 관점이 반영된 설명일 텐데, 스콜은 배려심이 강하고 다정다감했다. 인간의 관점을 거론한 건, 사람에게만 그랬다는 뜻이다. 개 세계에서는 개인주의자에 가까웠다. 산책 중에 마주친 다른 개들에게 무심했고 서열을 가리려 들지 않았기에 어쩌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도 늘 피했다. 대신 홀로 동네 구석구석을 탐색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보기에 명상을 즐긴 학자형 개였다. 평화주의자의 면모 뒤엔 예민함이 보일 듯 말 듯 자리했을 것이다.

반면 걸리버는 개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먹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개였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개라고 말하기 힘든 건 아마 셰틀랜드 쉽독이란 종의 특성이 작용했기 때문이지 싶다. 셸티라고도 불리는 이 종은 아무리 좋아도 배를 까고 헥헥거리지 않으며 주인이나 사람에게 과하게 치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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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연구소장으로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ㆍ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약 40권의 저역서가 있다.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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