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네, 나를 데려가

조제
조제 · 예술가
2023/03/06
(얼룩소에 동화나 소설을 올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가끔 올려볼게요)

도망치던 다프네는 아폴론의 손이 자기에게 닿을 것 같자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아름다운 내 모습 때문에 괴로워요. 제발 다른 모습으로 바꿔 주세요!" 그러자 다프네의 몸은 순식간에 월계수 나무와 나뭇잎으로 변해 갑니다. 하얗게 아름답던 얼굴도, 바람에 휘날리던 머리카락도 금세 굳어 딱딱하게 변했습니다. 

그리스신화 동화책을 읽던 소녀는 책장을 넘기며 한숨을 폭 내쉰다.

'다프네는 참 좋겠다. 무서운 일이 생기면 나무로 변해 도망칠 수 있으니까.'

그때,

"손전등 어디 갔어? 도대체 너는 뭘 제대로 두는 법이 없어!"

문이 벌컥 열리고 엄마가 갑자기 또 소녀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소녀는 깜짝놀라 책을 덮고 엉거주춤 일어나며 말한다.

"...어,어디 있었는데? 난 본 적 없는데..."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시 매서운 채찍처럼 말이 쏟아져나온다.

"네가 집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관심 가진 적이나 있었냐? 책장 서랍안에 내가 분명히 두었었는데 없잖아. 그러게 내가 정리 좀 하고 살라고 했는데, 방은 항상 너저분하고!"

한두번 들어본 소리는 아니지만 언제나 처음인 듯 한마디 한마디가 소녀의 마음을 쿡쿡 찌르며 세게 박혀든다. 금세 눈에 눈물이 고이지만 우는 걸 보면 더 화를 낼 테니 침을 꿀꺽 삼키면서 간신히 참는다. 목이 바들바들 떠는 게 느껴진다.

"내가... 찾아볼게."

소녀는 엄마의 괴물처럼 매서운 눈길과 가시돋친 목소리를 피하려고 허둥지둥 방을 나선다. 마루로 나오자 위태위태하게 눈가에 걸려있던 눈물방울이 바로 뚝 떨어진다. 자주 있는 소녀의 일상이다.

소녀는 학교에서 사람 친구가 없다. 하지만 그리스신화 동화책을 보고 난 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 옆에 있는 가로수에게 '다프네'라고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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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친족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오랜 노력 끝에 평온을 찾고 그 여정 중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로 희망과 치유에 대해서. '엄마아빠재판소',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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