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려놓고 어디로 가십니까 - 노량해전 3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2/13
(2에 이어) 
명나라 함대는 곧 혼란에 빠졌다. 일본군은 잡다하게 달려드는 명나라 군선들을 무시하고 진린의 배에 달라붙었다. 진린은 악을 쓰며 병사들을 지휘했지만 이미 등자룡의 죽음으로 한풀 꺾인 상황이었다. 일본 배들 곳곳에서 갈고리가 날아들었지만 어둠 속에서 명나라군의 사격과  포격은 정확하지 못했다. 읏샤 읏샤 일본군들이 칼을 빼들고 갈고리에 연결된 사다리를 밟았다. 몇 명만 넘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때 육중한 소리가 나면서 진린의 배에 달라붙은 일본 배 한 척이 깨져나갔다. 이순신의 대장선이 부딪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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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진린의 위기를 보고 진린마저 전사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직접 진린에게로, 아울러 일본군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지자 현자 황자 가능한 모든 총통을 쏘아대고 후퇴할 때 주로 썼던 조란환 (새알같은 포탄으로 밀집된 적을 쏘거나 추격을 막는데 쓰는)을 갈겨대고 불붙은 섶과 나무, 화염병의 일종으로 보이는 화호(火壺)까지 던져 대면서 조선군은 진린에게 달라붙은 일본군을 쓸어 나간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이순신의 칼에 새겨진 명문(銘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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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전멸시켜 조선수군 공포증을 좀 극복했지만 일본군은 이순신에 대한 공포증만큼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대장선 한 척을 감당하지 못했던 악몽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순신의 대장선이 숫제 일본 진영 한복판을 뚫고 들어온 상황, 일본군도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잡자 잡아보자.  이순신이 포위되자 이번에는 진린의 판옥선에서 포화가 불을 뿜었다.  그렇게 두 나라 군대의 주장(主將)들이 서로 구원하며 격전을 치르는 판이었다는 것은 노량해전 자체가 전례없는 난전(亂戰)임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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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선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다른 배들도 눈에 불을 켰다. 일본군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과거는 멀리서 포를 쏘아대서 얄밉던 조선 배들이 이제는 성난 곰처럼 네놈들 때려눕히겠...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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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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