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때문에 망한 사연

박일환
박일환 · 시인, 저술가, 국어사전 탐방자.
2024/05/13
책이든 영화든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제목 덕분에 흥하고 제목 때문에 망했다는 사례는 무척 많다. 나 역시 제목 때문에 망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몇 차례나 그랬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오래전에 잠시 출판사 대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시백 소설가의 짧은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을 냈는데, 제목이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였다. 제목도 독특하거니와 수록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에 책 제목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작가로부터 원망(?) 섞인 푸념을 들어야 했다. 소설집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더라는 거였다. 어떤 이는 980만 번, 어떤 이는 880만 번 같은 식으로 저마다 틀린 숫자를 들이밀 때 참 난감하더라는 작가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다.
   
몇 년 후 내 시집을 내게 됐는데,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해 몇 날을 고심하던 끝에 선택한 제목이 ‘지는 싸움’이었다. 그 무렵 나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이나 농성장을 종종 찾아다니며 시 낭송으로 연대의 마음을 보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소개하는 일이 참 곤혹스러웠다. ‘결사 투쟁’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하필이면 ‘지는 싸움’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라니! 결코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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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등단하여 <귀를 접다> 등 몇 권의 시집을 냈으며, 에세이와 르포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의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국어사전을 볼 때마다 너무 많은 오류를 발견해서 그런 문제점을 비판한 책을 여러 권 썼다.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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