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비세스 왕이 대한민국에 온다면...

박찬운 · 교수·변호사, 여행가이자 인문서 저자
2024/05/15
인문명화산책3

제라드 다비드, <캄비세스 왕의 재판>, 1498년, 목판에 유화, 브뤼헤 시립미술관 소장

 
사법살인으로 기록된 오판의 사법사

며칠 전 법조 선배이신 고 한승헌 변호사님이 쓰신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한참 눈을 감고 생각했다.


“권력의 이익과 눈치에 부응하여 신성한 재판을 그르친 사법부는 그 부끄러운 과오를 통렬히 참회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이 나라의 사법부가 위정자 내지 사회지배세력의 입김에 휘둘려 민주사법의 본질을 소홀히 하는 그 어떤 오류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책머리에)


해방 이후 우리 사법부엔 과가 많다.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조작사건으로 판명되었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인혁당 사건에선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고나서 18시간 만에 피고인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름하여 사법살인이다. 이 사건은 32년 만에 피고인 전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인혁당 사건은 무죄로 판명되었다. 한겨례 신문 기사

노변호사는 그의 50년 변호사 활동을 조용히 돌아보면서 우리 사법사를 이렇게 회고한다.

“50년이 넘는 오랜 변호사 활동에서 내가 본 한국의 사법부와 재판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적어도 시국사건 재판에서는 그러했다. 집권자 쪽에 기우는 법정, 입법자와 집권자, 그리고 재판관의 과오로 말미암은 피고인의 수난, 법의 보장기능보다 지배기능을 중시하는 재판, 정치상황과 시류에 좌우되는 영합적 논리, 정치의 사법화에 휘둘리는 사법의 정치화, 외풍 못지않게 위험한 사법부 안의 내풍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을 드러냄으로써 사법부가 오히려 법치를 왜곡하고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책머리에)

재판! 이것은 참으로 신성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창조한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국가라는 제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지만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약. 우리나라 인권법을 개척한 인권법 연구가.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등 10여 권의 인문교양서를 썼음
9
팔로워 23
팔로잉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