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물이 되는 경험

서리
서리 · 읽고 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
2024/05/11
임신했을 때 나는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서울의 큰 병원에서 응급 제왕절개술로 아이들을 낳았다. 임신이 시작된 날로부터 30주 3일이 되던 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수차례에 걸쳐 의사들이 몇 내 배에 붙여 연결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가더니, 아침 아홉 시에 “오늘 수술해야겠습니다. 1시간 뒤에 수술 들어갑니다.”라는 말로 나의 출산 일정을 통보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출산에 몹시 당황했다.

서울과는 거리가 먼 지방에서만 오래 살아왔고 가족 모두가 그러한 탓에 나는 그 병원에 혼자 입원해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할 때만 남편이 같이 갔고 다음 날에 출근해야 해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나는 온갖 위험천만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의사의 말을 들으며 멍해진 채로 수술동의서에 스스로 서명했다. 지금 내 앞에서 마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랩을 하는 것처럼 수술 부작용을 읊는 의사의 표정과 목소리와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의서에 서명한 직후부터 내 몸에는 일사천리로 수술 준비 과정이 진행되었다. 갑자기 내가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간 짐짝이 된 것 같았다. 이것 다음엔 저것, 그다음엔 또 다른 것이 내 몸에, 별다른 설명도 내 몸에 대한 염려도 없이 행해졌다. “좀 이따 수술해야 해서 이것 좀 할게요.”, “10시 수술이라 빨리 할게요.” 같은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수술실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겁이 났다. 나는 그 어떤 보호자도 없이 수술받아야 한다! 만일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수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이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나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수술을 통보받아서 수술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 보호자 없이 혼자서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무서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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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웁니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부글거리는 생각들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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