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들리는 소리'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12/30


안에서 들리는 소리     박노해
   
어린 날 흙담에 기대앉아 울다가
내 울음소리가 안에서 들리는 걸 알아챘다
그 메아리가 무서워서 그만 울음을 삼켰다
   
어느 날부터 내 말소리가 몸 안쪽에서 울려왔다
말을 하다가 나는 자꾸만 안으로 귀를 기울인다
말 저 안의 떨림과 빛과 울림을 따라 걸어 나온다
   
그 음정音情 그 음색音色 그 음경音景을 느끼며
내 말소리의 길들을 가만가만 따라 들어가면
누군가의 한숨과 울음과 비밀한 속삭임이 흐르고
소스라쳐 돌아 나오면 나는 말없이 침잠하곤 한다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날은 왠지
잘못 산 하루처럼 공허하고 쓸쓸하여서
내 음성音聲 안의 길들을 서성이다가
나는 그만 속으로 울고 말았지
   
내가 왜 갈수록 말이 가물어지는지
왜 너의 말을 안으로 기울여 듣는지
내 목소리에 깊은 심정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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