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낙새와 똥물-동일방직 여직공 복직 투쟁(1976)
2023/01/09
천연기념물 크낙새의 죽음
크낙새는 한국에 자생했던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의 일종이다. 만화 <딱따구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크낙새의 외형과 특징 따위를 대략 유추할 수 있다. 크낙새는 세계적 희귀종이어서 1970년대 초 경기도 양주의 광릉 숲에서 발견된 직후 천연기념물 197호 보호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개체수가 너무 적은 관계로 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해, 크낙새가 살고 있는 서식지 부근 농지에서는 농약 사용도 중지할 정도였다. 이렇듯 크낙새는 민관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됐지만, 발견 이후 간간히 목격되다 2008년 이후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1년여 동안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우리나라 최대 일간지들은 크낙새 소식을 종종 보도했다. 멸종 위기종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당연한 의무이며 격려할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1977년 3월 14일에는 보호 관찰 대상이던 크낙새 한 마리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동아일보』 사회면 톱기사로 대서특필됐다.
이유를 추적해보니 밀렵이나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어 죽은 게 아니라 포식자 야생 동물인 담비에게 크낙새가 잡아먹힌 그야말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몇 마리 남아있지 않은 크낙새가 한 마리 사라진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야생 담비의 먹이 활동도...
@jiaekim 여전히 가부장제가 공적 영역 사적 영역 안팎으로 두루 강고하죠. "남자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요즘 남자가 어디 그래", "옛날에나 그랬지" 하는 말들이 원래 누리던 것들에 대한 강렬한 향수와 복원 의지를 드러낸다고 봅니다. 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적 가부장제의 규율과 질서가 공적 영역으로 까지 전이”되었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결국 이것이 한국의 젠더이슈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부장제+ 기득권층의 이기주의, 이것이 결국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이지않을까요.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희생뒤에 사람들은 각성하고, 사회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콩사탕나무 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2014)이전에도 방현석 작가의 <아름다운 저항>(1999)에도 동일방직 해고 여공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해고된 동일방직 여공 당사자 중에서도 당시의 일화를 수기로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이재선 씨의 <그날이 올때까지>(1981)가 그 책입니다. 이재선 씨는 이 책을 출판하며 "자신과 같은 여공에게 용기를 주기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씀하셨네요. 이번 글이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용기내 마주해야 한다 말씀해주시니 저도 글쓴 보람이 있고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에서 동일방직 여공인 선주와 성희가 떠올랐어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여성 노동 투쟁이었지만 대다수 알지못하고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듯 합니다. ㅠ
부당하게 짓밟히고 훼손된 인권침해의 역사를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 무겁고 힘들었네요. 하지만 잊지 않고 마주해야하는 역사임을 한 번 더 깨닫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달빛소년 1970년대 여공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서는 김원 선생님의 <여공 1970, 근들의 반역사>라는 책을 보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SPC 공장 사망 사건을 비롯해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 관심과 변화에의 열망이 모이고 그것을 실천할 때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방직산업이 쇠퇴했지만 여공들의 노동 운동 정신은 이어져야 합니다. 삼립 안전 사고도 너무 쉽게 잊혀졌습니다. 역사가 증거인데 민간 자본가에 뭘 맡기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고 출산율 관련 언론의 보도도 결국에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강요하는 메세지가 되겠죠.
@nolja010 용기 내시구요. 생활인은 월요일이 제일 힘들죠. 여성 직장인들에게 유리천장이 하나둘이 아니죠. 바쁜 월요일 오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감사합니다.
@nowhere210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해고무효 소송 걸고 보상금 지급 판결 받기까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습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아픈 상처 궂은 일 다 잊기 마련인데, 잊히지 않는게 있죠. 동일방직 여직공분들에게는 복직이 평생의 숙원이지 않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일흔살 하머니들 복직하기는 어려워도 사측에서 전향적인 조치와 보상 취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박 스테파노 그렇죠. 여성 노동 잔혹사에서 방직공장 여직공들은 대표적인 표본이지요. 요즘은 호텔이나 리조트에 가보면 젊고 싱싱하고 값싼 노동력을 예전 방직공장 여직공 채용해 써먹는 방식으로 부리는 것 같더군요. 관련 인력 공급은 무한정이고, 겉보기 나름 번듯한 일자리니 실습과 수습 등으로 이름붙이고 염가로 부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nodae79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분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아직 충분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늘 뉴스를 보며 살았고,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들춰보면 설마 그런 일이. 진짜 저랬다고 하는 일들이 진짜 있었죠. 차별 없는 세상은 공동체의 사회적 관점과 인식이 변화하고, 개인도 꾸준히 노력해야만 조금씩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냥 떡 하니 거저 찾아오지는 않을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방직산업의 중흥기는 끝났지만 오늘날에도 다수의 여공(정말 쓰기 싫은 표현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여공이라는 표현을 쓰며 하대하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표현을 그대로 씁니다)들로 구성된 많은 산업군이 있습니다. 이곳들에는 오늘날에도 그시절 동양방직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많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요.
젠더 이슈가 일반화된 오늘, 가장 젠더 이슈에 민감한 이들의 이야기는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의 아픈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어떤 근로자든지 성의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제 첫 클라이언트가 "충남방직"이었습니다. "방직" 전성기가 지났지만, 고객사에 떡하니 자리 잡은 '메인프레임'이라는 대형 컴퓨터는 그 기업의 지난 날의 화려하던 한 때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 회서에 전사저원관리시스템(ERP)를 제안하는 것이 미션이었는데, 의사결정자인 임원이 한마디로 일축하더군요.
"여상 졸업반 실습생 십수명이면 주판으로 다 관리가 되는데, 왜 돈을 들이겠냐?"라는 것이지요.
당시 공장에는 실업계 고교 실습생으로 라인을 돌리고, 다시 다음 해에 새로운 실습생을 받고... 남학생들 보다 여학생들이 순종적이고 생활의지가 강해 고용한다며 으스대던 그 기억이 나네요. 노동이 설비 나사 하나같은 취급을 받던 시기가 2000년도 였습니다.
작가님 글을 읽다보면 현실을 알고있는 상태에서 몰랐던 과거에 대해 기시감을 느끼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크레인에 올라가 수십, 수백여일 농성을 하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보다 한낱 연예인의 시시껄렁한 열애설이나 자극적인 사건사고가 더 쉬이 읽히고 알려지는 작금의 상황이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가 않네요.
당시 고생하셨던 많은 여공 분들의 지금이 조금은 더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크낙새가 딱따구리인 것도 처음 알았고, 제가 태어난 고향 근처에 있는 기업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르고 살았네요. 링크단 문장 누르니까 옛날 신문으로 넘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이총각 할머니 얼굴과 눈빛이 선명한게 월요일 아침부터 힘을 내게 합니다.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사적 가부장제의 규율과 질서가 공적 영역으로 까지 전이”되었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결국 이것이 한국의 젠더이슈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부장제+ 기득권층의 이기주의, 이것이 결국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이지않을까요.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희생뒤에 사람들은 각성하고, 사회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콩사탕나무 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2014)이전에도 방현석 작가의 <아름다운 저항>(1999)에도 동일방직 해고 여공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해고된 동일방직 여공 당사자 중에서도 당시의 일화를 수기로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이재선 씨의 <그날이 올때까지>(1981)가 그 책입니다. 이재선 씨는 이 책을 출판하며 "자신과 같은 여공에게 용기를 주기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씀하셨네요. 이번 글이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용기내 마주해야 한다 말씀해주시니 저도 글쓴 보람이 있고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에서 동일방직 여공인 선주와 성희가 떠올랐어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여성 노동 투쟁이었지만 대다수 알지못하고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듯 합니다. ㅠ
부당하게 짓밟히고 훼손된 인권침해의 역사를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 무겁고 힘들었네요. 하지만 잊지 않고 마주해야하는 역사임을 한 번 더 깨닫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달빛소년 1970년대 여공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서는 김원 선생님의 <여공 1970, 근들의 반역사>라는 책을 보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SPC 공장 사망 사건을 비롯해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 관심과 변화에의 열망이 모이고 그것을 실천할 때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방직산업이 쇠퇴했지만 여공들의 노동 운동 정신은 이어져야 합니다. 삼립 안전 사고도 너무 쉽게 잊혀졌습니다. 역사가 증거인데 민간 자본가에 뭘 맡기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고 출산율 관련 언론의 보도도 결국에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강요하는 메세지가 되겠죠.
방직산업의 중흥기는 끝났지만 오늘날에도 다수의 여공(정말 쓰기 싫은 표현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여공이라는 표현을 쓰며 하대하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표현을 그대로 씁니다)들로 구성된 많은 산업군이 있습니다. 이곳들에는 오늘날에도 그시절 동양방직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많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요.
젠더 이슈가 일반화된 오늘, 가장 젠더 이슈에 민감한 이들의 이야기는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의 아픈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어떤 근로자든지 성의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제 첫 클라이언트가 "충남방직"이었습니다. "방직" 전성기가 지났지만, 고객사에 떡하니 자리 잡은 '메인프레임'이라는 대형 컴퓨터는 그 기업의 지난 날의 화려하던 한 때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 회서에 전사저원관리시스템(ERP)를 제안하는 것이 미션이었는데, 의사결정자인 임원이 한마디로 일축하더군요.
"여상 졸업반 실습생 십수명이면 주판으로 다 관리가 되는데, 왜 돈을 들이겠냐?"라는 것이지요.
당시 공장에는 실업계 고교 실습생으로 라인을 돌리고, 다시 다음 해에 새로운 실습생을 받고... 남학생들 보다 여학생들이 순종적이고 생활의지가 강해 고용한다며 으스대던 그 기억이 나네요. 노동이 설비 나사 하나같은 취급을 받던 시기가 2000년도 였습니다.
작가님 글을 읽다보면 현실을 알고있는 상태에서 몰랐던 과거에 대해 기시감을 느끼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크레인에 올라가 수십, 수백여일 농성을 하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보다 한낱 연예인의 시시껄렁한 열애설이나 자극적인 사건사고가 더 쉬이 읽히고 알려지는 작금의 상황이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가 않네요.
당시 고생하셨던 많은 여공 분들의 지금이 조금은 더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동일방직 여공들의 용기와 합심있는 투쟁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리천장은 존재하며 더욱 교묘해져 차별인지 차등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때도 있습니다.
그저... 불합리하다 느끼면서도 무엇이 불합리한지 개선하고 투쟁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지 못하고 좋은게 좋은거라며 합리화하며 개인화 하며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쯤 용기가 생길까요?
회사에 반감이 불끈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