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II) - 어디로 넘었는가? (1)
2023/01/08
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 - 폴리비오스(Polybios)의 '역사(Historia)'와 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I) - 리비우스(Livius)의 '로마사(Ab urbe condita)'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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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중요 원전을 보셨지만, 어디서도 한니발이 넘은 고개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리비우스는 당시에 벌써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고 확인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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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중요 원전을 보셨지만, 어디서도 한니발이 넘은 고개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리비우스는 당시에 벌써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고 확인해 줍니다.
나는 그가 넘은 알프스의 범위에 더욱 놀라고, 페니누스(Poeninus)를 –그 이름이 알프스의 능선에 붙었다 – 지났다고 믿는 경향에도 놀란다. 켈리우스(Coelius)는 크레모(Cremone) 산 능선을 지나갔으며, 두 길 모두 한니발을 [실제 만난] 타우리니족이 아니라 살라소스(Salassos) 산을 통해 리비키(Libici) 족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같은 시간에 그들이 갈리아로 통하는 길을 개방했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페니누스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은 분명히 반(semi)-게르만 부족이 [한니발을] 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논의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다면) 헤르쿨레스(Hercules)는 이 능선의 주민인 세두노베라그리 족(Sedunoveragri)이 카르타고인이 지나갔다는 것에서 이 산들이 이렇게 이름이 붙었다고 안다고 말하나, 실은 그 산 사람들이 페니누스(Poeninus)로 이름한 것은 가장 높은 정상에 사는 신의 이름을 딴 것이다. [38절에서]
리비우스가 저술하던 당시는 BC 30년대기 때문에, 이미 BC 218년에서 190년 가까이 지난 후였습니다. 폴리비우스도 적어도 50년은 지난 상태였으니, 이 때에는 이미 정확한 정보가 잊혀졌을 만합니다.
문헌에서 비정하기 힘들다면, 고고학적으로 단서를 발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알프스를 지나면서 상당한 수의 카르타고 병사들과 코끼리가 목숨을 잃었으니, 유해가 집중된 곳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운 좋으면 외치(Ötzi) 정도로 의복과 장비가 잘 보존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설령 나온다 해도 확실한 단서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당시 수 만의 병사에다 코끼리까지 끌고 알프스를 넘은 사람이 한니발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BC 207년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 바르카(Hasdrubal Barca)가 겨울에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3만 대군과 코끼리 적어도 10마리 이상을 거느리고 통과했죠. 그리고 이 둘이 같은 고개를 넘어갔을 가능성이 100%라 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니발의 막내동생 마고 바르카(Mago Barca)는 한니발과 동행했기 때문에 길을 알고 있었지만, 스페인에서 형 하스드루발이 이탈리아로 출발할 때는 동행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어느 사료도 하스드루발이 한니발과 같은 경로로 들어왔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둘 사이의 11년의 차이는 방사성 탄소 분석으로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1991년의 분석 얘기라 지금은 좀 좋아졌겠지만, 외치의 측정 결과를 인용하면
... 사체와 유물 양쪽을 연대측정해보기로 했다. [중략] 제일 오래된 것이 기원전 3365년, 제일 새로운 것이라 해도 기원전 2931년이다. 네 연구소의 데이터를 평균해 보니 기원전 3300년에서 3200년 사이의 것임이 드러났다.
"5천 년 전의 남자(Der Mann im Eis)", 콘라드 슈핀들러, 최몽룡 역, 청림출판, p.105
외치는 BC 218년보다는 두 배 반 정도 오래됐습니다. 당연히 오차도 더 크겠지만, 400년이나 차가 나왔다는 것은 감안해야 합니다.
고고학적으로 결정적 증거를 찾을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면, 문헌에서 나온 행적 묘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방법은 어떨까요? 잘 살펴보면, 은근히 단서가 많습니다.
< 폴리비오스 >
- 42절; 바다에서 약 4일 거리에 있는 시냇물이 하나뿐인 곳을 건너 기슭을 건너기 시작했다. (론 강 도하점)
- 47절; 바다 반대인 동쪽 방향으로 강둑을 거슬러 올라갔다. (코끼리까지 도강을 완료한 후)
- 49절; 한니발은 4일 동안 도하점에서 꾸준히 행군하면서 인구가 많고 곡물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인 ‘섬’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그 지역의 양쪽을 따라 흐르는 론 강과 이세르(Isère) 강이 그 지점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 50절; 이세르 강둑을 따라 800 스타디아(≒148km) 거리를 열흘 동안 행군한 후, 한니발은 알프스의 등반을 시작
- 50절; 그의 명령대로 수행한 정찰대원들은 적이 있음을 알려왔는데, 적은 낮에는 가장 엄격하게 그들이 점령한 자리에 머물렀지만, 밤에는 이웃 마을로 물러났다. (알프스로 올라가는 입구)
- 53절; 한니발이 기병과 수송대의 전진을 엄호하기 원했음에도, 노출된 바위로 방어막을 삼고 병사들이 밤새 노력한 결과 간신히 구출해 낸 기병과 수송대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다음 날, 적들이 떠난 후, 그는 기병대와 수송 동물들과 합류하여 고개 정상으로 갔다.
- 53절; 아흐레 동안 산을 오른 후에 한니발은 정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이틀 동안 생존자들에게 휴식을 주고 낙오자를 기다려 야영했다.
- 54절; 원기를 북돋우려, 그는 병사들을 집합시켜 산맥 아래에 실제 가까운 이탈리아의 광경을 보게 했다. 알프스 산과 이탈리아를 함께 볼 때, 성채가 도시에 접해 있듯이 알프스가 이탈리아 전체에 면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포 평원을 보여주고 거주하는 갈리아인들의 우호적인 감정 및 로마의 상황을 지적하면서, 그는 병사들의 의지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 55절; 이전 겨울부터 남아 있던 오래된 눈 위에 내린 새로운 눈은 부드럽고 신선했으며, 아직 깊지 않았다. 하지만 새 눈 위를 밟으면 아래에 있는 얼어붙은 눈을 만나 더 빠지지 않고 두 발로 미끄러졌다.
- 55절; 알프스의 정상과 고개 꼭대기 근처의 모든 부분은 겨울과 여름 모두 계속되는 눈 때문에 나무가 없고 헐벗었지만..
< 리비우스 > 폴리비오스의 단서와 거의 같은 것은 뺐습니다.
- 27절; 이 목적을 위해 그에게 약 25마일(1마일=1.5km) 떨어진 곳에서 강이 작은 섬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강폭이] 넓어서 더 얕은 수로가 있는 통로가 있다고 알렸다. (도하점)
- 31절; 알로브로게스족의 분쟁을 조정한 후, 알프스 산맥으로 갈 때 한니발은 곧바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틀어 트리카스티니(Tricastini) 족의 영토로 들어갔으며, 다음에는 보콘티(Vocontii) 족 영토의 맨 끝 경계를 타고 트리코리(Tricorii) 족의 영토로 나아갔는데, 드루엔티아(Druentia)강에 이를 때까지는 장애물이 없었다.
- 34절; 그들이 큰 오버행(overhang)이 한쪽에 있는 좁아지는 협로로 들어왔을 때, 야만인들이 매복해 있다가 가까운 곳과 먼 곳 사방에서 한꺼번에 앞뒤로 공격했고, 군대에 거대한 돌을 굴렸다.
- 35절; 그러나 알프스 산맥의 경사도가 이탈리아 쪽에서 일반적으로 더 가파르기 때문에,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보다 훨씬 더 어려움이 밝혀졌다.
이런 단서들을 지도 및 지형과 맞춰 사용할 수 있습니다.
== to be continued ==
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