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비가 와서

재재나무
재재나무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2024/09/05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길상호
   
베어 묶어 둔 빗줄기가
뒷마당에 다발로 쌓여 있었다
   
금낭화는 
네 개의 유골단지를 쪼르르 들고
꽃가지가 휘었다
   
뒷산에서 잠시 내려온
아버지와 큰형과 둘째형과 똥개 메리는 
대화를 나눌 입이 없고
   
서로를 무심히 통과하면서
물웅덩이마다 둥근 발자국을 그려 놓았다
   
헛기침에도
꽃이 떨어져 깨질까 봐,
그들의 빈 눈과 마주칠까 봐,
   
나는 먹구름과 함께 발뒤꿈치를 들고
그 집을 나왔다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봄이 벌써 반 이상 떨어지고 없었다
   
*****
시인이 기다리는 건 봄이다. 그러나 봄이 오긴 애저녁에 글러 먹었다. 봄이 오라고, 봄이 간절해서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도 봄이 벌써 반 이상 떨어지고 없었다니...
빗줄기가 쌓인 뒷마당으로 내려온 네 개의 유골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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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냥 저냥 생활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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