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2) -“우리 동네가 문디 동네가?”]
2024/05/07
“댕댕댕댕...”
대청마루 벽에 걸려있는 괘종시계가 새벽 네 시를 알리고 있다. 김치성의 눈이 저절로 떠졌다. 금식을 시작한지 오늘이 보름째 되는 날이다. 온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하지만 머릿속 만큼은 명정(明淨)하다. 하현달의 맑고 투명한 빛이 방문 창호지에 비춰왔다. 인기척에 금촌댁도 기침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밤이 되면 기침이 심해진다. 어떤 날은 기침이 멈추지 않고 한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럴때는 이마에 식은 땀이 비같이 쏟아진다. 병원에서는 천식인데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라고 한다. 지난 번 명호가 욱이와 싸우는 날에 명례댁의 독한 말을 듣고서 입에서 피를 토한 이후에 천식이 악화되고 있다.
“당신! 오늘이 금식 시작한지 보름째예요!
이러다가 당신 몸까지 상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김치성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성냥을 찾아서 머리맡에 놓여있는 촛대에 불을 켰다. 그리고는 옷장에 있는 두꺼운 외투를 끄집어냈다. 좌탁 옆에 있는 검정 손가방에 성경책과 안경집을 넣었다.
“아이들 밥 먹이고 학교 가는 것을 에미한테 맡기지 말고 당신이 좀 챙기소! 혹시 오늘 기도 시간이 길어질지도 모르겠네! 자! 그럼 난 예배당에 다녀올테니!“
방문을 열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가슴을 탁 찌른다. 섬돌에 내려서니 온 집안이 달빛으로 조요하다. 마당에 쌓아놓은 볏가마니를 덥고 있는 지푸라기 위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그것이 달빛에 비치니 고운 은싸라기라도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는 김치성을 알아보고서 짖지 않고서 꼬리만 살래살래 흔들고 있다. 대문을 나와 골목길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차가운 공기에 머릿속은 상쾌했지만 두 다리에는 힘이 풀려서 어린 아이처럼 돌부리에 몇 번씩이나 채였다. 동네를 빠져나오기 까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 집집마다 강아지들이 요란하게 짖었다.
새벽길,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길 ...
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