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 곁에 앉아(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배윤성
배윤성 · 에세이집 '결론들은 왜 이럴까'를 냄
2023/10/10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기도 버거운데 엄마가 냉장고에서 커다란 수박 덩이를 꺼내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대청에 누워 부채질하며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있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이 칼과 도마를 가져오려고 어기적 거리며 일어났다. 
  “옆집에 같이 가자구. 잘못 하다간 아저씨 먼 길 가고 나서 병문안 가게 생겼어.”
  여기서 아저씨는 어린 시절 우리 자매의 사진을 찍어주던 ‘옆집 아저씨’를 말한다. 팔척 장신에 늠름했던 아저씨는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되었고 위암 판정을 받아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아저씨가 오늘내일한다는 얘기를 들은 지 꽤 되었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숨 막히게 덥다는 것을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후회를 할 것 같아 따라 나서기로 했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아줌마는 많이 늙어있었다. 그녀는 내 손에 들려 있던 수박덩이를 받아 들며  미안해 하면서도 좋아했다. 반가워하는 아줌마 뒤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결혼한 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근 십오 년 만에 처음 만난 것이다. 오늘내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나는 아저씨의 변해버린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면 옆으로 비켜서야 할 만큼 아저씨의 풍모는 당당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아니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해도 될 만큼 허물어져 있었다. 
  검게 타들어가는 얼굴에 눈만 휑하니 불거져 있고, 이불 바깥으로 나와 있는 팔은 인간의 뼈 구조를 알게 할 만큼 앙상했다.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 침대맡에 놓여 있는 약 상자를 쳐다보았다. 
위암이 이렇게 무섭다. 아저씨는 개미 목소리로 속삭이고 난  뒤 힘없이 눈을 감았다. 
   
  옆집 안채와 우리 집 마당이 붙어있어 벽 너머로 음식을 주고받을 정도로 두 집이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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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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