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닮았으면 불효자야.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3/10
"딸이면 좋겠다."

엄마는 '여동생에게는 말하지마. 부담 갖는다.'란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아이의 성별이 밝혀진 이후에는 엄마의 말이 또 바뀌었다.

"아들이라 다행이다."

평소보다 퇴근이 늦은 적막한 도로 위에서 엄마가 툭하고 내뱉는다. 대부분의 가게가 다 닫은, 늦은 시간이었기에 나는 엄마의 초과근무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딸이면 좋겠다며?"

"딸이면 사돈한테 미안하지."

"왜? 제부네는 대 잇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데?"

"그런게 있어. 친정엄마만 느끼는 그런 미안함이 있어."

'너는 결혼을 안 해서 몰라'라는 뉘앙스를 나에게 전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때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내가 언제쯤 남자를 데려올까, 기대감을 굳이 숨기지는 않곤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아빠때문에 속상한 날엔 '혼자 사는 게 최고지.'라는 말로 바뀌곤 했었지만 말이다. 여동생이라도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조만간 손주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나의 결혼에 대한 관심은 많이 식은 상태였다.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경험해봤기에, 굳이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엄마가 고맙곤 했었다.

엄마는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시기를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릴 적 오빠만 아끼는 외할머니에게 섭섭함이 많았다는 이야기, 공부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아들만 대우하는게 너무 싫어 죽기살기로 일을 해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 주곤 했었다. 그나마 엄마의 공부 재능이 너한테 가서 아쉬움이 덜하다며 위안을 삼는 사람이었다.

우리집 또한 아들을 낳기 위해 언니,나,여동생이 태어난 격이었다. 딸.딸.딸.아들 집안, 남동생을 임신했을 무렵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져 지울 위기까지 갔었지만, 증조할머니께서 "이번에 아들이야."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뱃속의 아기를 포기하지 않으셨단다. 다행히, 어머니의 목숨을 위협하던 막둥이는 아들로 태어나며 온 집안, 친척들을 포함하여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큰집 큰며느리로 시집 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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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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