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노경호 · 연구자
2023/03/16
교실 속 민주주의는 학교폭력을 뿌리뽑지는 못하지만, 학교폭력에 '대응'할 수는 있다.

1. 인간의 조건: 학교폭력은 필연일까?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참인 한, 학교폭력을 포함한 사회 모든 곳에서의 폭력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다. 첫째, 그 어떤 인간집단에서든 그 집단에서 통용되는 규칙들을 위반하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강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강자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태어나는 것인지, 심리학적으로 그렇게 발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우리가 거시적으로든 미시적으로든 그런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보인다.

둘째, 보통의 집단은 그 집단의 유지와 안정을 위해 규칙 위반자를 제재할 수많은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수단이 100퍼센트 모든 규칙 위반, 여기서는 '강자'의 폭력을 제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사후적' 제재가 발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셋째, 다수는 선하고 '강자'의 폭력을 미워하며, 규칙이 지켜져 집단이 안정되기를 원하지만 문제는 개인으로 보면 그들이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즉, '나'가 '강자'의 폭력에 맞서 저항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려 해도, 만약 '너'가 그에 보조를 맞춰 행동해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만 '강자'의 새로운 표적이 되거나 막심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너'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한 누구도 행동하지 않고 결국 다수는 방관자가 된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참인 한, 사회 곳곳의 폭력을 뿌리뽑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학교, 즉 교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 조건들 중 첫 번째 것은 인간 본성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인간의 행위가 가진 물리적(시공간적) 한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운 반면, 세 번째 것, 즉 타인에 대한 불신이라는 조건을 바꿔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개인이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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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합니다; 번역: <정치철학사>(공역, 도서출판길, 2021),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신문 <뉴스토마토> 시론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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