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민족문학사상> 제2호 권두언/ “남북 장벽, 언젠가는 무너진다”-김우종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10/04
미리 읽는 <민족문학사상> 제2호 권두언/ “남북 장벽, 언젠가는 무너진다”-김우종
   
   
1. 무너지는 장벽의 전제 조건
   
적막한 세상에 단 둘이 남아 있던 남매가 산마루에 올라가 맷돌을 굴렸다. 그리고 뒤따라 아득히 먼 산 밑에 내려가 보니 두 맷돌은 신기하게 아래위로 짝 붙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남매는 하늘의 뜻인 줄 알고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후손이 번성해 나갔다.
우리도 DMZ 어느 고지에서 만나 맷돌을 굴려 볼까?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하는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내 그림 <DMG 나비들의 반란>에서는 남북의 나비가 만나 짝짓기를 하며 하나가 되고 있다. 또 그곳에는 문인비도 많다. 장벽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빌다 간 문인들이 그렇게 많았으면 하는 나의 소망을 그린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되려면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빌지 않아도 그 장벽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필연이다. 몇 만 년 인류의 역사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무너지려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한다. 온 천지가 적막강산이 되기 전에 무너져야 한다. 불바다가 되고 방사능 벌판이 된 자리에서는 장벽은 무너지거나 말거나이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우리의 장벽은 남과 북의 장벽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동독 서독과 다르다. 우리는 독일과 달리 전쟁으로 서로 깊은 상처를 입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살아 있는 집단이다. 이 상황에서 DMZ는 오히려 평화를 위한 임시방편이 되고 있다. 서로 싸우다 상처를 입은 맹수들은 한 우리에 같이 가둘 수 없다. 그 우리가 평화로우려면 한 마리는 죽어야 한다. 이런 통일은 용납될 수 없다. 동족 아닌 이방인끼리라 해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존엄성이 부정되는 어떤 통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장벽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무너지지만, 현재의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아 있을 때 무너져야 하고 평화적으로 하나가 될 때 무너져야 한다. 그런데 이 조건은 그냥 기다려서 오는 것...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315
팔로워 5
팔로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