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인류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 하나를 더할 나위 없이 대담하게 제시한다. 내란의 증거를 모두가 똑똑히 목격했건만 아무것도 저절로 매조지 되지 않는 현실은 민주주의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임을 똑똑히 증거했다. 민주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고 혹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움직여 지켜내는 것임을 이제 어린 세대도 체감적으로 안다. 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선조차도 겨우 지탱해나갈 수 있을 따름이다. 민주주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앞에는 허공 어딘가에 떠있는 민주주의를 바라보고 그 방향으로 움직일 선택만 놓여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명한 명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밑에 깔린 비관주의와 그 비장함이 일으키는 일말의 비감이 불편했다. 본질이기 때문에, 더도 말고 덜도 말 진실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대통령까지 지낸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순진하게 믿지도 않았고, 그것이 저절로 존재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살인기계’ 수준의 부대가 대한민국 국회를 유린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전 세계 시민들은 그 뒤 아무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제도의 초현실적 무력함에 더 크게 띵해졌을 것이다. 세상에는 게임에서처럼 당연한 것이 하나 없었고 저절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지도 않았다. 200만 명이 생활을 뒤로하고 추운 날에 여의도를 가득 매우지 않았으면 그나마 답답한 탄핵 과정도 뒤따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프로토콜? 법률? 그게 뭐였지? 먹는 거였나? 피곤하다! 지친다! 그러나 별다른 수가 없다. 공기 중에 떠도는 이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려면 매번 이렇게 길거리로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