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소설] 앞장과 뒷장 사이의 우주 (3)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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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전의 서구 문명에서 ‘책’이란 오직 하나만을 의미했다: 성서. 맨 처음 ‘파피루스’라는 뜻을 지닌 비블로스(biblos)에서 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비블리온(biblion)이 파생됐고, 성서(Bible)라는 단어 역시 여기서 나왔다. 기독교 세계관이 집약된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만물의 사용설명서였다. 신에게 바칠 단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토스 산맥의 수도원에서 필경사로, 채색가로, 제본가로 헌신했다.
최초의 책은 두루마리 형태였다. ‘볼루멘(volumen)’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얇은 파피루스를 펴서 이어붙이고 양 끝에 상아나 나무로 된 막대기를 덧대어 둘둘 마는 것으로, 접기가 불편하고 양면을 모두 사용하기 힘든 파피루스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와 로마로 건너간 이 방식은 기원후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코덱스(codex)’ 형태로 변모한다. 두루마리 형태가 아닌 낱장을 묶어 끝을 꿰매는 방식인 코덱스는 볼루멘에 비해 훨씬 견고했을 뿐 아니라 휴대가 간편했고 보존이 용이했다. 책의 재료 역시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바뀌었다. 이제는 양면 기록이 가능했고 심지어 책을 양손에 들고 읽을 수도 있었다. 로마의 발명품인 코덱스는 2세기부터 4세기 사이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본격적으로 대중화된다. 조효은 대표는 코덱스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코덱스 형식은 닫혀 있으면 공기로부터 저절로 차단돼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디바이스인 셈이죠. 저는 이걸 책이 스스로 선택한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끝에 이런 구조만 살아남았으니까요. 좋은 종이를 쓰고 튼튼하게 묶어놓으면 천 년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요. 언제든 다시 풀고 묶어서 수명을 늘려줄 수도 있고요.”
그녀는 서가에서 낡은 표지의 책을 한 권 가지고 와서 보여준다. 코덱스를 펼치자 표지와는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