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트로 ⑥> 나의 자랑스러운 ‘단독 기사’-창경원 홍학 下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1/03
<나의 레트로 ⑤>에서 계속. '창경원 홍학' 기사도 앞에 쓴 추리소설 기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동대문경찰서 출입기자들은 동대문경찰서에서 멀지 않은 창경원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때는 동물원이 서울 창경원에 있었다. (창경원은 1983년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서울랜드로 옮겨 가고 이름이 ‘창경궁’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이 즐길 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때, 동물이 주인공인 기사가 잘 읽힌다고 배우던 때였다. ‘스무 살 푸마가 후손을 보았다-어제 네 마리 순산-신부도 11세 늙은이’,  ‘창경원 물범 석 달째 단식-고향 생각에 식욕 잃어’ 같은 기사를 찾아내는 게 그때 동대문경찰서 출입기자들의 중요한 일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비판성 기사가 나가야 할 자리를 이런 읽을거리, 즉 연성(軟性)기사가 차지할 때가 많았다.

동대문경찰서 기자들은 머리 식히려고도 창경원에 자주 갔다. 사건·사고가 없으면 기자실이나 형사계장실(길통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그것도 무료해지면 걸어서 10분 거리인 창경원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이 동물 저 동물 우리 앞을 돌아다니며 되는 이야기 안 되는 이야기를 시시덕거렸다.

그때도 홍학 우리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목을 길게 뺀 채 가느다란 다리로 줄지어 서서 날개를 파르르 떠는 홍학의 군무(群舞)를 보려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홍학 우리에는 어른 허리께에 오는 낮은 철창만 있을 뿐 달리 가로막는 게 없었다. 그물로 지붕을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우리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갖기 힘들었다. 관람객들은 그만큼 부드러운 핑크 빛 홍학의 우아한 모습을 더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사육사를 만났다. 그날 창경원에 함께 갔던 일행 중 한 명이 사육사에게 물었다. “홍학 떼가 길이 잘 들었네요. 훈련이 잘 됐으니 저렇게 지붕 없는 곳에 풀어놔도 날아가지 않는 거지요?” “길들인 게 아니라요, 날개를 한 쪽 자른 거라고요.그러니까 못 날지요.” 사육사의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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