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초 씨 구술생애사 1 _ “아버지는 윤판곤, 어매는 장순덕.”

블라시아
블라시아 · cpbc 라디오 작가인 기혼 여성
2024/03/21
1월 29일,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참 멀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해서 갔을 땐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니 두 시간이다. 5년 전부터 할머니는 서울 모처에서 혼자 산다. 그전엔 딸네 집과 맏아들네 집을 오가며 살았다. 외손주가 지방 한의대에 진학했을 때는 같이 내려가 살림을 해주기도 했다. 할머니가 맏아들네 집인 우리집에 와 있던 시기는 내가 초등학생 때와 대학생 이후였을 거다. 할머니와 같이 살긴 했어도 할머니의 방은 비어있을 때가 많았다. 우리집에 계시면서도 수시로 서울 고모댁과 강진 이모할머니댁을 오가셨기 때문이다. 늙은이가 어쩜 그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지 참 대단하시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1928년 생, 올해로 만 아흔여섯이다. 이젠 전처럼 다니기 힘들다고 말씀 하시지만 간혹 통화할 때 얘기 들어보면 고모랑 국내 여행을 다니시는 모양이다. 여전히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씩씩하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크고 또렷한지, 할머니와 통화하고 나면 정정하시구나 싶어 안심하곤 한다.
   
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지하철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니 할머니가 서 있다.
   
- 추운데 집에 계시라니까 기어코 나오셨네. 오래 기다리셨어요?
- 오냐! 한 시간 기다렸다!
   
깜짝 놀란 나와 다르게 할머니의 표정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한 시간 기다렸다는 말은 장난일수도 사실일 수도 있다. 전에 운전해서 할머니 집에 갔을 땐, 할머닌 내가 주차할 자리를 맡으려고 집 앞 골목길에 30분 넘게 서 있곤 했다. 다른 차가 주차하려고 오면 손을 내저으며 물리쳤다고 한다. “곧 있음 여기 차 댈 것이요.” 운전자 입장에선 황당할 테지만 상대가 어르신이다 보니 다들 군말 없이 비켜주었나 보다. 덕분에 나는 다세대 주택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에서도 매번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가는데 횡단보도 앞에 김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완도김' '파래김' '햇김'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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