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첫 변론'을 허하라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6/30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전쟁 발발 10년 , 휴전 후 7년의 그 삭막하고 삼엄한 시기에 이런 시를 썼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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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명된 조지훈 시인 역시 대쪽같은 선비적 기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종군 예술단원으로 6.25 현장을 누볐던 조지훈 시인으로서는 전쟁의 원흉이라 할 김일성 만세를 용납하기 어려웠을 테고, 누군가 김일성 만세를 부른다면 대한민국 망칠 놈으로 도끼눈을 떴겠지요. 하지만 김수영은 바로 그 지점을 치고 들어갑니다. 김일성에 맞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공산당에 싸워 자유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이라면 김일성 만세 같은 허파 뒤집히는 소리까지도 감내해야 하고 그게 ‘언론의 자유’의 출발이라고 말입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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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그로부터 한 갑자가 지난 요즘에조차 김수영의 꿈은 한여름밤의 개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면 ‘반국가집단’이라는 딱지를 날리는 판에 얼척없이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자가 무슨 횡액을 당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현직 대통령을 위시한 그 언저리 사람들에게 김일성 만세란 참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한 찬양이자 대한민국의 상식과 가치에 어긋나는 망발일 테니까요. 즉 ‘김일성 만세’란 절대로 토론의 대상이 아닌 응징의 대상이 되며, 표현의 자유와 해당사항 없는, 표현의 책임을 져야 할 범죄일 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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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만세까지 갈 것도 없이,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에게 동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숱한 사람들이 홍역을 치러 온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김일성이 항일 운동을 한 것은 맞다는 팩트 확인조차 조심스러웠고, 북한이 70년대까지는 우리보다 잘 살았다는 말도 쉽게 꺼내면 안되었으니까요. 4.3이나 여순 사건 당시, 그리고 6.25 발발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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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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