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해한 욕망의 탑: <데블스 에드버킷>

차구마
차구마 · 창작집단 차구마컴퍼니입니다.
2023/10/13
인간의 이성과 상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영화 장르를 '오컬트'라고 부른다. 인간이 축적한 지식으로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을 향해 가는 이런 영화 장르를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생각하는데, 이러한 영화들은 주로 악령이나 악마와 같은 미신적인(혹은 미심쩍은) 존재들의 힘을 빌어 인간의 불완전성을 낱낱이 고발하기 때문이다. 오컬트 영화 속에서 우리의 불완전성은 미지의 존재로부터 명징하게 지적받는다. 종교적 차원에서 인간은 완전한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완벽한 피조물이지만, 윤리적 차원의 인간은 사실 불완전하고 어두운 존재들과 더욱 닮았다는 것, 혹은 기어코 닮아간다는 것.

최근에 만난 어떤 영화는 악마와 인간, 지옥과 현세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흥미롭게 육박해온다. 흔히 끔직한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악마에 비유하지만(악마 같은 인간), 사실은 악마가 인간의 형상을 비유하여 만들어진 존재일 수 있다는 의심을 짙게 만드는 영화(인간 같은 악마). 이런 영화는 소름과 전율을 동시에 전달하고, 세계는 마침 어둡게 깊어진다.

테일러 핵포드의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1997)을 본다.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포스터 (네이버 제공)

탄생

울먹이는 한 소녀가 법정에 앉아 있다. 그녀가 내뱉는 진술은 끔찍한 그날을 정확히 묘사한다. 어느 하교 시간, 그녀의 선생이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그리고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는 것. 공포에 질린 그녀의 진술이 계속되는 동안 피고인석에 앉은 선생은 그날의 끔직한 유희를 되새김하는 듯 책상 아래서 음흉하게 손을 움직인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로맥스(키아누 리브스)가 발견한다. 피고인의 행동을 보며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그는 피고인의 변호사다.

진실에 집중한다면 재판의 진행이 무의미한 명백한 상황. 지금껏 단 한 차례도 패소한 적 없는 유능한 변호사인 로맥스는 갈등에 빠진다. 진실을 겸허히 따라 당연한 패배를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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