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똑같을 수 없다. '내가 너라면...'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방성
방성 · 공학자
2023/08/01
인간 관계는 일종의 개별 프레임이다. 관계가 집단적이고 복잡한 네트워크로 보인다해도 잘 들여다 보면 결국 1대 1의 프레임의 집합이다. 이 개별 프레임에 공감과 공명을 이야기하다 보면 역설이 존재한다. 분명 공감이나 공명은 같은 감정, 같은 생각의 범위를  전제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이란 형용사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본업이 있었던 나는 어느 날 새로운 영역에 진입했다. 연구하고 개발하는 공학자가 저술 활동을 하게 되며 출판 생태계를 접했다. 시쳇말로 ‘부캐’를 만든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멀티페르소나를 지닌 것이다. 나의  선택은 최근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상황)와는 상관없었다. 여전히 노동은 본캐에 무게중심이 있었고 부캐에서 또 다른 역량이 중심이 됐다. 부캐릭터에서의 페르소나 활동은 오히려 상처 입은 본캐의 회복에 도움이 됐다. 물론 지금 사회적 현상인 사회적 가면의 페르소나는 아니었다. 숨어 있던 것이 아니라 SNS에서의 부캐는 이름이 다른 페르소나로 존재했다. 대부분 집필을 밤에 해서 낮과 밤을 오가며 노동자와 작가라는 중첩된 인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충고를 들었다. 출판계 종사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나의 부캐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나의 부캐는 일종의 가짜라는 것이다. 마치 내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SNS에서 나의 부캐를 관종(관심 종자의 속어)이라 칭했다.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일탈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다. 지인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 있었다. 내 입장을 그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는 왜 설명이나 설득을 해야 하는 지 이유도 몰랐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피로감이 몰려왔고 나는 대화를 멈췄다.  그동안 가깝다고 여긴 지인이 낯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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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이다. 그냥 세상의 물질과 이것 저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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